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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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대추나무와의 인연

2022-06-30 (목) 김관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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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내 손에 들려준 대추나무 묘목은 회초리처럼 가늘고 연약해서 이게 과연 생명 있는 나무인가 싶을 정도였다. 이미 마당에는 화초나 과실수가 각각 자리를 잡고 있는 터라 내 방 가까이에 있는 빈 땅에 꽂았다. 꽂았다 함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회초리 같던 대추나무는 1년 사이 키가 훌쩍 자라서 이듬해에는 황록색의 잘디잔 꽃을 피우더니 손가락 한마디만한 열매도 맺었다. 미국의 대추는 아기 주먹만한 데 우리 집의 첫물 대추는 약대추처럼 잘았다. 한 해 지나면 크고 실한 대추를 수확할 수 있겠다 싶은 기대감으로 그때부터 부지런히 거름을 주며 가꾸었다. 여리디 여린 묘목이 생명의 씨앗을 품어 겨울의 찬비와 바람을 견디고 열매를 맺은 대추나무가 대견해서 방에 앉아 책을 읽다가도 기웃이 내다보는 일도 즐거웠다.

대추 꽃의 은은하고 달콤한 향기와의 만남도 그 때가 처음이었다. 대추 나무는 처음 핀 꽃이 열매를 맺으면 다시 꽃이 피고 그 꽃에 열매가 달리면 다시 꽃을 피우는 식으로 일년에 세 번 꽃을 피웠다가 가을에 몰아서 열매를 익힌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대추가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폐백 때나 아이들 돌상 차림에 빠지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세상살이가 늘 그렇듯 굵고 실한 대추 열매를 보기 전에 사위의 전근으로 집을 옮겨야 했다. 이듬해, 우리가 살던 그 집의 세입자인 한국인으로부터 크고 실한 대추가 많이 열려서 잘 따 먹었노라는 말을 들었다. 누구라도 맛있게 먹었으면 됐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영국 속담이 떠올랐다.
‘벽에 못을 박으면 누군가 모자를 건다.’

그러니까 나는 벽에 못을 박은 셈이었다. 그것으로 내 임무는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그 대추나무가 몹시 그리워진다. 그 대추나무로 인해서 주변의 나무들을 관심있게 살피게 되었으니 나와는 각별한 인연인 셈이다.

내가 걷기 운동을 하는 코스 중간에 먼 바다를 바라보며 다리 쉼을 하기에 적당한 곳이 있다. 거기에 내 나무 한 그루 정해 놓고 정을 나눈다. 거센 바다 바람을 견디느라 몸통은 상처투성이에 거칠고 투박하지만 품만은 아주 넉넉하다. 그 나무 안에 담긴 우주의 신비 앞에 잠깐씩 머물면서 나는 내 영혼의 남루를 벗어놓는다. 그 시간이 내게는 소중하고 즐겁다. 나는 어쩌면 내 마음에도 큰 나무 한 그루 심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누군가의 가슴에 큰 나무로 자라고 싶은 건지도.

<김관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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