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어린 시절 시골 피난 생활이다. 6.25전쟁이 막 일어나고 피난가기 전인 듯하다. 동네 어른들이 우리집 마당 한가운데를 웅덩이처럼 파고 무엇인가 가득 담은 가마니들을 묻는 광경을 보았었다.
살고 있던 동네에서 약간 떨어진 산골짜기로 피난 가서 대여섯 집이 같이 살았다. 피난 첫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나뭇가지로 엉성하게 지은 움막집인데 하늘이 보이고 지난밤에 덮고 잔 이불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어른들이 집에서 갖고 온 돼지를 잡는 모습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시골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아침 조례에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6.25의 노래를 불렀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라고 힘차게 발로 땅을 치며 노래를 불렀었다.
전쟁터에서 팔을 잃고 의족의 끝부분이 쇠로 된 갈쿠리 손을 달고 다니는 상이군인과 발을 잃고 목발과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상이군인을 많이 보며 어린 시절이라 무척 무서웠다.
그들은 6.25전쟁과 정부를 증오하면서 한평생 살다갔을 것이다. 6.25전쟁에 참전한 국군 및 유엔군 용사들과 순국한 호국 영령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직도 강원도 비무장 지대에서 치열한 전투 후 흙 속에 깊은 잠이 들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영령들이 하루 속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길 기원한다.
워싱턴 DC에 6.25전쟁 참전 기념비 공원의 추모의 벽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숨진 미군 3만6,634명과 카투사 7,174명 모두 4만3,808명의 6.25참전 영웅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6.25전쟁에 유엔군이 참전하지 않았으면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까! 미국이 유엔군의 일원으로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으면 대한민국이 현존할 까! 6.25전쟁에 참전 전사한 미국 청년들은 무엇을 위해서 그들의 소중한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전했나! 그들은 한국인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소중한 목숨을 바쳤다.
더욱 굳건한 한미 동맹으로 자유와 평화가 대한민국에서 영원하기를 염원한다.
최근 한반도 안보 상황은 상당히 위험에 처해 있다. 미중의 대립으로 한반도는 전략적 최전선에 서 있다.
북한 공산주의 집단은 남한을 침략하려고 모든 획책을 강구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북한을 지렛대 삼아 유류와 식량을 공짜로 주고 있고 북한은 미사일과 핵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정부는 북한의 침략을 막을 준비를 철저히 해서 절대로 적화 통일이 되지 않기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본다. 6.25전쟁 때 최후의 보루 낙동강 전투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 자유대한민국이 영원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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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흥성/뉴저지 팰팍 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