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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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엄마, 그 이름의 역할

2022-06-24 (금) 스테이시 김(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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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지 벌써 두 해가 지난다. 살아계셨더라면 올해 여든 여덟일 게다. 암환자라는 칭호가 무색하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고통을 호소하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은 엄마가 정작 암환자라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본인이 드러내지 않고 참아내셨거나 혹은 하늘의 특별한 은혜로 육체의 아픔이 없었던지는 알 수 없으나, 그분의 온화한 성품은 주변을 소란스럽게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가셨다.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셨던 양로원 원장님은 지금도 내게 엄마는 천사였다고 말해서, 그 모습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난 금방 눈물을 머금는다. 엄마라는 단어는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를 곧장 아이가 되어버리게 한다. 역사를 불문하고 한없이 넓고 큰 품을 가진 단어는 엄마, 어머니일 터이다.

결혼한 지 10년만에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샌프란시스코의 나를 아는 지인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딸, 아들 둘 모두 셋을 낳았다. 그 아이들을 키우면서 난 비로소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았다. 성질머리를 있는 그대로 부릴 수 없는 지위가 엄마라는 것도 깨달았고, 남편과 갈등을 겪는 중에도 아이들의 존재는 나로 하여금 인내하게 했다. 막내가 심한 사춘기의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난 매일 그를 위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고, 밤이 늦도록 연락이 닿지 않아 종종거리며 애태울 때는 엄마라는 역할이 버거워서 허걱허걱 울었다. 우울증으로 방문을 잠그고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아이에게 큰소리 못내고 뒷마당 먼곳에서 숨죽여 울면서, 아이보다 많이 참고 이해해야 하는 게 엄마의 숙명인가 싶어 가슴을 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난 조금씩 그냥 여자가 아닌 엄마, 어머니로 성숙해갔다.

이제 모두 성장한 아이들에게 엄마의 역할은 보호가 아닌 관망으로 위치가 달라졌다. 그들에게는 관심이 아닌 간섭, 조언이 아닌 참견, 배려가 아닌 부담으로 관점이 바뀌어 진 듯하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지만 마니어리티 정체성을 염려해 학교에서의 위치를 세워주려고 일찍부터 자원봉사를 했는데, 그것이 나를 이 사회에 문화적으로 빨리 적응하게 했고 지금의 나이에도 부담없이 일할 수 있게끔 했다. 이제는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나를 내어줘야 할 시기가 아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나이에 들어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 나를 돌보며 씩씩하게 사는 것이 당당한 엄마로서의 역할이고 모습이 아닐까. 여전히 엄마의 넓고 큰 품을 간직함은 물론이다.

<스테이시 김(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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