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씽어즈’(이하 뜨씽즈)를 시청하지 않은 사람 혹은 ‘뜨씽즈’ 단원들이 부른 노래를 단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이가 있다면, 그의 눈과 귀가 부럽다. 바꿀 수 있다면 바꿔서, 새로운 눈과 귀로 ‘뜨씽즈’의 감동을 다시금 누리고 싶다. ‘뜨씽즈’ 프로그램을 한 번이라도 시청했거나 짧은 영상으로라도 접했다면, 그 한 번은 금세 두 번, 세 번이 될 것이다. 장담컨대 그럴 수밖에 없다.
JTBC의 ‘뜨씽즈’는 지난 3월14일부터 5월30일까지 11부작으로 방영된 합창 예능 프로그램이다. 한국 나이 86세 김영옥 배우, 82세 나문희 배우를 필두로 본업이 배우인 대다수 합창단원들의 나이는 합쳐서 990세다. 평균 연령이 50대 중반인 단원들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중장년이다.
첫 회부터 ‘뜨씽즈’는 시청자들의 감정에 파도를 휘몰아쳤다. 단원들은 자기 소개로 노래 한 곡 씩을 선보였는데, 노래에는 개개인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10년 이상 단역, 조연을 해오던 서이숙 배우는 데뷔 18년 만에 연극에서 첫 주연을 맡았고, 25년 차에 처음으로 드라마에 출연해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쳤다. 그녀는 ‘이 길이 맞나’ 흔들릴 때마다 힘이 돼준 노래였던 가수 마야의 ‘나를 외치다’를 자기 소개곡으로 불렀다.
‘절대로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 뒤처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나의 길을 가고 있다고 외치면 돼.’ 시간의 공력을 믿는다는 그녀 인생의 태도가 진득하게 배어 있는 노래는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받으며 유튜브에서 100만뷰 이상의 누적 조회수를 기록했다. 옆집 언니가 술 한 잔 기울이며 ‘너가 가는 길이 맞다’고 응원해주는 듯한 노래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김영옥 배우는 임형주 성악가의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불러 현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이 노래를 듣고 울지 않은 이가 있을까.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 나는 그곳에 없어요 /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로 시작되는 노래 가사를 86세의 할머니는 또박또박 이야기하듯 읊는다. 이 추모곡은 떠나간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인간의 유한함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시청자들은 지금은 곁에 없는 소중했던 누군가를 기억하며 오열하는 동시에 말로 표현하지 못할 큰 위로를 받았다.
지면이 부족해 다른 단원들의 노래는 일일이 소개할 수 없지만, 모든 노래에는 서사와 배우들의 뜨거운 진심이 있었다. ‘뜨씽즈’ 단원들의 노래는 정확한 음정, 박자, 가창력을 갖춘 노래만이 좋은 노래가 아님을 새삼 입증했다. 삶의 단면을 그려낸 작품같은 노래들은 매회 많은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힘든 시간과 고뇌가 없는 인생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우리 누구나 살면서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때문에 우리네 인생이 담긴 ‘뜨씽즈’ 단원들의 노래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동시에 따스하게 보듬어줬다.
100일간의 합창 연습 여정을 마친 이들은 영화 ‘위대한 쇼맨’의 OST ‘This is me’를 한글로 번안한 곡 ‘디스 이즈 미(This is me)’를 백상예술대상에서 생방송으로 합창했다. 원곡은 저항 정신이 주제였다면 번안곡은 인생에서 현실적인 벽을 극복하려는 단원들의 의지와 희망에 초점이 맞춰졌다. 오랜 시간 배우로 살아왔던 단원들은 자신 스스로를 비롯해 선배, 후배, 동료들에게 힘찬 응원가를 보냈다. 데뷔 57년 만에 일흔 여덟의 나이로 백상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는 나문희 배우는 “여든 둘에도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뜨씽즈’ 합창의 의미를 되새겼다.
단원들 16명 대부분은 작품 속에서 주인공 보다는 조연, 단역을 맡아왔다. 하지만 ‘뜨씽즈’ 제작진은 단원 모두에게 골고루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16명의 주인공을 만들었다. 단원들은 이제 다시 저마다의 삶으로 되돌아가 여러 작품에서 주연, 조연, 단역을 넘나들 것이다.
하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다.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속 할머니 역할의 김영옥 단원은 말한다. “인생에서 주인공도 해보고, 엑스트라도 해보고, 조연도 해보고, 그렇게 사는 게 재미제.” 그저 나답게 사는 일, ‘이게 나(this is me)’라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보이고 살아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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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희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