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한 달 동안 한인 축구팬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해 준 것은 영국 프리미어 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의 대활약과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둘러싼 토트넘과 아스널과 간의 피 말리는 막바지 경쟁이었다. 토트넘은 EPL 정규시즌 마지막 날인 22일 노리치와의 경기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4위 팀까지 주어지는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을 확보했다. 손흥민은 이날 두 골을 추가하면서 아시아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유럽 5대 리그 득점왕에 오르는 위업을 이뤘다.
EPL은 단연 전 세계 최고의 리그이다. 유엔 가입국보다 많은 212개국에서 경기가 방영되고 있으며 전 세계 47억 명이 EPL 경기를 시청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EPL의 시장 가치는 천문학적 액수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유럽의 다른 빅리그들 까지 압도한다.
그러나 EPL이 항상 최고의 리그였던 것은 아니다.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EPL은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경기장 시설과 폭력적인 관중들, 그리고 수익성 악화 등으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대대적인 개혁에 나섬으로써 오늘날의 리그를 만들어 올 수 있었다.
EPL 성공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된 것은 마케팅이다. EPL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영국의 노동계층을 주 타깃으로 설정하고 있다. 계급사회인 영국에서는 엔터테인먼트의 형태 또한 계층 간의 차별점이 분명하다. 소득이 많은 계층은 스스로 움직이는 엔터테인먼트, 즉 승마와 골프, 테니스 같은 스포츠를 많이 즐기는 반면 돈과 시간 등 자원이 부족한 계층은 이런 스포츠를 직접 접하기가 힘들다.
이런 사람들에게 EPL은 삶속에서 경험해보기 힘든 짜릿함을 선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각 팀들은 팬들이 직관이나 TV를 통해 축구를 보면서 일체감을 느끼도록 유도한다. 그래서 팀의 성적은 곧 그 팬의 개인적 성취감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금년 EPL 시즌 막바지에 가까스로 강등권을 탈출한 팀들의 팬들이 보인 반응은 우승팀 팬들의 그것보다 더 열광적이고 격정적이었다. 팬들의 표정에서는 마치 개인적으로 살아남는데 성공한 듯 환희와 안도감이 역력했다. 그래서 “프리미어 리그는 성취감을 판다”고들 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팀과 팬들 사이에 동일시의 정서가 강하다고 해도 경기 자체의 수준이 떨어지고 재미가 없다면 그런 일체감은 유지되기 힘들다. EPL이 최고 리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경기 수준 자체가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팀들 간의 전력 균형을 돕기 위한 파격적인 수익분배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EPL은 세계 최고 리그답게 천문학적 중계료를 벌어들인다. 지난 1992년 EPL은 획기적인 수익분배 방식을 택한다. 중계료 가운데 50%를 모든 팀들에 꼭 같이 나눠주기로 한 것이다. 나머지 절반은 성적과 방송 노출 횟수 등에 따라 차등으로 지급된다.
각 팀이 알아서 중계계약 하고 각종 수입을 챙기는 각자도생 방식이라면 군소 마켓 팀들은 생존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면 전력과 성적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리그의 역동성과 재미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빅 마켓 팀들의 불만과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리그 사무국은 ‘공존’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2016년 만년 하위였던 군소마켓 팀 레스터시티가 EPL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EPL은 축구팬들에게 최고 수준의 경기를 통해 더할 나위없는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그리고 EPL의 성공을 가능케 한 혁신과 공존의 정신은 비단 스포츠뿐 아니라 기업들, 그리고 나아가 국가의 운영과 관련해서도 시사해주는 바가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