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여행 소회(所懷)
2022-05-27 (금)
스테이시 김(사회복지사)
일주일 간의 짧은 한국으로의 여행은 오랜만에 딸과의 동행으로 설렜다. 그러나 여행의 마무리는 촉박한 일정에 무리가 있었던 듯 즐거움과 동시 육체의 한계를 느끼게 해서 역시 나이는 못속이는가 싶다. 그나마 계획했던 일정을 다 마무리할 수 있었음은 감사한 일이었지만, 긴 비행시간과 그 이후의 시차적응으로 어찌나 힘에 부치던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일상회복이 느릿느릿 버겁다. 그래, 이제 난 내 육체가 쇠하여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볼 때 돌아가신 엄마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촘촘한 일정임에도 고등학교 동창 둘이 살고 있는 제주도에 잠깐 다녀올 수 있었음은 그나마 축복이었다. 푸른 바다가 넘실대고 성산봉과 한라산이 의연한 무게중심으로 서있는 섬, 제주는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서귀포시는 이미 관광지로 자리잡은 옛 터로서의 이름값을 하고 제주시는 오히려 투박한 자연의 숨결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올레길로 명명된 코스를 따라 걸으면 바닷바람과 숲의 조화가 심장 구석을 짜릿하게 하는 상쾌함을 선사했고, 검은 바위절벽을 배경으로 바다물결이 하얀 수포를 일으키며 그려내는 모습에는 탄성을 발하였고, 먼 발치에 놓인 오밀조밀한 바위들의 군락이 뿜어내는 광경에는 다리 위에 선 내가 하늘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걷기에 편하도록 어찌나 시설을 잘 관리했던지, 이같은 소중한 자원을 많은 이들로 하여금 누리게 한 손길에 감사함을 표할밖에 없다. 미국의 국립공원과 비교해 사이즈로는 견줄 수 없겠으나, 풍경의 내용으로 더 따뜻하다 느낌은 아마도 내가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기에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친구는 오래될수록 더 좋다. 더욱이 10대에 인연을 맺은 우리가 60대에 이르기까지 나눈 이야기는 진주보다 값지다. 소녀에서 처녀로, 엄마에서 할머니로의 변화를 자근자근 나누는 동안 공통의 삶의 아픔과 기쁨의 진면목이 감춤없이 고스란히 서로에게 전달되면서 다져진 우정이다. 이젠 시기나 질투 혹은 부러움도 옅어진 가운데 각자의 인생을 고즈넉히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세월의 갈피에 새겨진 얘기들은 비록 잊혀진 게 수두룩해도, 보이지 않는 나무 속 나이테가 묵직한 연륜을 보여주듯이 인생을 가다듬는 노년 시기의 우정은 소중하다. 남은 세월, 우리가 그려낼 모습이 그래서 궁금하고 즐겁다.
<스테이시 김(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