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기자의 눈] 원칙의 무너짐

2022-05-24 (화) 신영주 기자
크게 작게
한번 무너진 원칙은 다음에도 또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원칙을 깨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다른 한인회장들도 이사회 승인을 받아 4차례 임기를 연장하면서 ‘SF한인회의 선례’를 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SF한인회는 팬데믹을 이유로 2번, 한인회관 공사를 이유로 2번, 곽정연 회장의 네 차례 임기 연장이 정관에 의거해 이사회에서 승인됐다고 밝혔다. 한 이사는 “곽 회장의 신념과 희생봉사를 많은 동포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회관 개조 후원금이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다”면서 “한인들의 대표인 이사들이 (곽 회장의 4번째 임기 연장을) 통과시켰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따졌다.

정관 제21조 선거관리위원의 임무 3항 “본 회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별도의 시행 세칙을 만들어 반드시 이사회의 동의를 얻어서 시행해야 한다”에 의거해 임기 연장이 적법하다는 주장인데, 계속 선거 시행 세칙을 만들어 4번이나 회장의 임기를 연장한 것은 정관의 허술함과 모호성을 악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관에 명시된 선거 시행 세칙은 선거가 실시될 경우에 만들 수 있는 것이지, 임기 연장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내용은 없기 때문이다. 정관 자체가 불명확하고 허점이 많아 얼마든지 이사회가 편의에 따라 잣대를 들이대 정관대로 했다고 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고 이사들은 한인들이 선거로 뽑은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대표자라 말할 수 없고, 수많은 한인들 중에 한인회에 봉사하려고 나선 사람으로서 한인회 집행부를 견제, 감시하며, 한인회 운영에 관여하는 이들이라 할 수 있다.


SF한인회 재정이 불투명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와서 곽 회장에게 물어보면 “(재정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만 거듭할 뿐,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해달라는 요청에는 “왜 재정보고를 언론에 보여줘야 하느냐”고 답했다.

그런데 지난 4월 11일 이사회에서 재정 집행이 불투명하다고 의혹을 제기한 그린 장 전 수석부회장을 부정적 여론을 조성했다는 이유로 제명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지난해 10월 세번째 임기 연장으로 논란이 됐을 때 일부 이사들은 8월에 재정보고를 받았다면서 한인회 재정 담당자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 “재무가 따로 없다”고 답했고, 곽정연 회장은 “초기 재무를 맡았던 김한회 이사가 그만두고, 조숙자 부회장한테 재무를 맡으라고 해도 맡을 수 없다고 해서 (내가) 맡고 싶지 않았지만 맡은 것”이라면서 “한인회 어카운트 사인권자는 나와 박병호 이사장”이라고 밝혔다. 회장과 이사장이 재정까지 맡아서 하는 것은 비영리단체 운영규정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한인회장들이 취임할 때마다 ‘투명한 재정 공개’를 마치 잘 지킬 것처럼 내세우지만 어느새 하나마나한, 공허한 공약으로 부끄러움만 남긴다. 아직도 한인단체들이 주 검찰이 요구하는 비영리단체 운영 기준에서 한참 멀기만 하다. 비영리단체가 주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되는 경우는 ▲각종 신고 서류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자산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 ▲이사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지 않는 경우 ▲이사장 등 특정 이사에게 권한이 집중된 경우 ▲이사회 회의록 미 작성 및 보관 소홀 등이다.

<신영주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