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엄마라는 이름의 죄

2022-05-18 (수) 남상욱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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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계신 분은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한때 한국 TV에서 한국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던 ‘우정의 무대’의 ‘그리운 어머니’ 코너에서 병사들이 무대 뒤편에 있는 어머니를 두고 각자 자신의 어머니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군기 바짝 든 목소리로 내뱉은 말이다. ‘그리운 어머니’ 코너는 1989년 4월부터 1997년 3월까지 인기리에 방송된 ‘우정의 무대’의 하이라이트 코너였다. “엄마가 보고 플 때 엄마 사진 꺼내 놓고~”라는 가사의 ‘그리운 어머니’ 노래와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라는 말은 한동안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

무대에 초대된 어머니가 비록 내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무대 뒤편에 있는 어머니를 장병들이 한 목소리로 ‘어머니’라고 외치며 불러낼 때 무대 위의 어머니는 ‘나와 우리의 어머니’가 되어 버리는 묘한 감동을 느끼곤 했던 프로그램이었다.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어머니’라는 존재는 무엇이든지 다 받아줄 수 있는 푸근함의 끝판왕쯤 되는 존재다. 각개전투 훈련이라는 이리로 구르고 저리로 구르는, 그야말로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훈련을 모두 마친 뒤 훈련 조교의 ‘엄마 구호’ 명령에 땀과 흙으로 뒤범벅된 훈련복을 보며 ‘어머니 생각’에 눈물을 찔끔 흘렸던 경험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독특한 경험으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

내 마음 속의 어머니들이 현재 고군분투 중이다. 팬데믹이라는 전무후무한 상황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어머니, 소위 ‘워킹맘’이 다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의 노동경제학자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가 연방정부 통계 등을 분석해 조사한 팬데믹 전후 미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실태를 보도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초 기준으로 영아 자녀를 둔 미국 대졸자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비율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 초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4세 이하 자녀가 있는 대졸자 여성이 취업상태인 경우가 3.7%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는 것이다. 반면, 4세 이하 자녀가 있는 비대졸자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비율은 같은 기간 4.4% 하락했다.

자녀의 연령을 모든 연령대로 확대해 살펴봐도 2021년 기준 미국 대졸자 여성의 경제활동 비율은 2018년보다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골딘 교수는 강조했다.

인구조사국(USCB)의 경제학자 미스티 헤게니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3월 기준 5∼17세 자녀가 있는 워킹맘의 비율이 2019년 3월보다 1.7% 늘었지만 5세 미만 자녀를 둔 워킹맘 비중은 오히려 4.2% 줄었다.

어찌 보면 워킹맘의 증가는 남녀 고용 격차를 줄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지만 워킹맘에게는 육아라는 또 다른 부담이 어깨를 짓누른다.

보육 시설이 인력난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육아로 인해 워킹맘 가운데 120만명은 아직 일터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가 2년 넘게 지속되면서 보육 시설과 시스템의 공백이 온전히 일하는 어머니의 몫이 되면서 워킹맘들의 육아 부담이 증가했다.

육아와 자녀 돌봄 부담으로 일터 복귀를 하지 못하는 워킹맘들이 존재하면서 이른바 ‘쉬세션’(shesession) 우려가 나오고 있다. 쉬세션은 ‘여성(she)’과 ‘경기침체’(recession)의 합성어로 경기 침체로 여성이 대규모 실직 사태에 처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바로 육아와 자녀 돌봄 때문이다. 쉬세션 문제는 여전부터 거론되어 왔지만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그 위험성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미국의 쉬세션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전 세계 경제대국 중에서 ’유급 육아휴직‘ 제도가 없는 유일한 나라가 미국이다.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2015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국 근로자의 21% 정도만 유급 육아휴직 혜택을 누리고 있으나 그나마도 국가에서 시행하는 제도가 아니라 사용자가 제공하는 복지혜택의 일환이었다.

유대 속담에 따르면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한다. 신과 같은 존재의 어머니가 일이라는 공적 영역의 부담과 함께 육아와 자녀 돌봄이라는 사적 영역의 부담까지 짊어지며 신음하고 있다. ‘엄마가 된 죄’라는 통속적인 표현으로 지우기에는 무게가 너무 크다.

이제 우리들의 관심은 워킹맘의 회복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고단한 삶의 무게뿐 아니라 마음의 무게에서 나온 이야기에 귀를 기울어야 할 때다. 마치 무대 뒤의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라고 확신하듯이 워킹맘도 우리의 어머니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남상욱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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