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는 않으렵니다.” 안도현 시인은 ‘화암사, 내 사랑’이라는 시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감추려 할수록 더 궁금해지는 게 사람 마음이다. 그의 시 덕분에 혼자만 알고 싶은 ‘잘 늙은 절 한 채’는 세상에 더 알려지게 되었고, 사계절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찰이 됐다. 전북 완주는 전주 주변으로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지만, 북쪽은 대둔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높지 않지만 깊다. 골짜기에 자리 잡은 마을은 산촌(山村)이자 산촌(散村)이다. 경천면 불명산 자락의 화암사가 위치한 곳도 해발 300m에 미치지 못하지만 꼭꼭 숨은 듯 외진 곳이다.
■절보다 길… 첫발부터 신록의 꽃밭화암사 가는 길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절 입구까지 가는 도로 일부는 아직도 좁은 농로를 지난다. 주차장에서 사찰에 이르는 길도 조금 편하게 다듬어 놓은 정도다. 절반은 설렁설렁 계곡을 따라 걷고, 사찰을 코앞에 두고는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불과 800m 남짓 하니 잰걸음으로 불과 20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화암사 가는 길은 그렇게 오르기엔 너무 아깝다.
신록이 꽃보다 눈부신 계절이다. 아주 느리게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메마른 가슴이 촉촉해지고, 바스러진 마음에도 생기가 돋는다. 없던 시심(詩心)이 절로 솟아날 것 같은 길이다.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길은 두 갈래다. 오른쪽은 걷기 편하도록 제법 넓게 다듬은 길이다. 왼편은 오가는 사람들의 무수한 발걸음에 저절로 형성된 오솔길이다. 일행이 여럿이면 앞뒤로 나란히 열을 지어야 하고, 둘이라면 몸을 바짝 붙여야 손잡고 걸을 정도다. 대개는 넓은 길을 택하지만 걷는 재미를, 숲이 주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주저 없이 오솔길로 들어선다. 안도현은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라고 했다. 그도 이 길을 선택했을 게 분명하다.
첫걸음부터 초록 융단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연두에서 초록으로 짙어지는 단계다. 비밀의 정원, 환상의 숲으로 빠져든다. 그 초록 융단에 애기똥풀, 미나리냉이, 덩굴꽃마리, 흰제비꽃, 산괴불주머니 등 앙증맞은 들꽃이 별처럼 흩뿌려져 있다. 무심한 발길에 밟히고 뭉개져도 다시 일어서는 들풀이다.
초록 오솔길을 지나면 계곡을 따라 오른다. 더러는 한 발짝 옆에서, 일부 구간은 돌다리로 건넌다. 저 멀리 절벽에서 폭포수가 쏟아진다. 웬만하면 그럴듯한 이름 하나 가질 법도 하지만, 겉치장 없이 그냥 폭포다. 화암사 턱밑에 있는 폭포는 물줄기도 더 굵고, 낙차도 더 크지만 이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 발을 담갔다. 아직은 얼음장처럼 차다. 10초를 버티지 못했다. 한여름에도 이럴지는 알 수 없다. 이렇게 찬물에 용케도 올챙이들이 꼬물거린다.
제법 모양새를 갖춘 2개의 폭포 외에 계곡에는 서너 개의 작은 폭포가 더 있다. 규모가 웅장하지도 소리가 요란하지도 않는데 오래도록 시선을 잡는 묘한 매력이 있다. 실오라기처럼 가늘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그대로 비단폭포다. 폭포가 아니라도 계곡에는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조곤조곤 말을 건네는 길동무다. 동행한 이정지 완주 문화관광해설사는 "친구처럼 따라오는 계곡 물소리, 애인처럼 속삭이는 새의 울림, 숲의 정령처럼 흔들리는 나뭇잎이 동행하는 길"이라고 표현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절간을 코앞에 둔 마지막 오르막에 절반은 떨어져나간 ‘화암사’ 표지판이 서 있고, 바로 옆에 위험하니 우회하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우회로는 육중한 철재 계단이다. 든든하기는 하지만 계곡 특유의 아기자기함을 깨는 것처럼 이질적이다.
달콤하게 꿈속을 걷다가 단단한 쇠기둥에 이마를 부딪힌 느낌이다. 더구나 계단 끝부분은 수직으로 쏟아지는 폭포 한가운데를 관통해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이왕에 돈 들일 거면 옛길의 돌계단을 안전하게 복원했으면 좋았겠다.
그렇게 단꿈에 젖어 화암사 경내에 다다르면 화장기 없는 우화루가 반긴다. 휘어진 기둥이 누대를 떠받치고 있다. 누마루 입구에는 나뭇결이 유일한 장식인 목어가 매달려 있다. 안전 때문에 마루에 들어갈 수 없는 점이 몹시 아쉽다. 화려한 단청이 없기는 극락전, 적묵당, 산신각 등 다른 건물도 마찬가지다. 지형대로 약간 경사지게 마루를 깐 적묵당의 나무 기둥도 눈길을 잡는다. 세월에 낡고 닳은 부위를 오려내고, 군데군데 조각보처럼 덧대고 보강한 모습에 오래된 절간의 소박한 기품이 배어 있다. 극락전 현판은 여느 전각처럼 하나의 목판이 아니라 한 글자씩 분리돼 있다. 자세히 보면 서까래 사이에 빛바랜 불화가 보인다.
화암사 극락전은 국내에 단 하나뿐인 하앙식(下昻式) 구조의 목재건물로 국보로 지정돼 있다. 하앙식은 바깥에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는 부재를 하나 더 설치해 처마를 길게 뽑는 방식이다. 일반인의 눈에는 건물 앞뒤로 돌출된 용머리와 꼬리로 확인된다. 요사채 뒤편으로 나가면 겹벚꽃나무 한 그루 아래에 금낭화와 붓꽃 등이 하늘거리는 작은 꽃밭이 나온다. 돌나물이 암반을 뒤덮었고, 그 위에 산신각이 장난감마냥 얹혀 있다. 모든 것이 또 꿈결 같은 풍경이다.
화암사의 이런 모습에 반한 문인은 또 있다. 남원 출신 복효근 시인은 미발표작 ’화암사’에서 “얻는 데 반생, 갚는 데 한생 걸린 빚, 또 얻어도 된다면…단청 벗겨진 우화루 햇살 한 폭 얻어다간 이불호청으로 쓰지”라고 했다. 그리고 “이자 붙여 갚아야 한다면, 뒷생 내내, 이 계곡 어디쯤 세들어, 맑은 새소리 공양으로나 갚으면, 될까, 될까 몰라”라고 읊었다. 시인은 대학생 시절 부인과 데이트를 하며 화암사를 여러 번 들렀다고 한다. 연애 감정으로 충만한 청년의 마음까지 홀린 절이다.
부도탑이 있는 절간 뒷담장 너머에 지금은 신록이 한가득하다. 사찰 옆 ‘화암사 중창비’를 돌아 서쪽으로 얼굴을 내민 바위에 걸터앉으면 지나온 계곡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인다. 초록이 짙어 푸른 바람이 넘실거린다. 안도현은 또 다른 시 ‘식물도감’에서 "화암사 뒷산 단풍 나 혼자 못 보겠다, 당신도 여기 와서 같이 죽자"라고 했다. 아무래도 가을에 다시 와야 할 모양이다.
■잘 가꾼 개인 정원 ‘화산꽃동산’흐드러진 봄꽃을 만끽하고 싶다면 화산면의 ‘화산꽃동산’을 추천한다. 화암사와는 약 18㎞ 떨어져 있다. 화암사 가는 길이 자연의 정원이라면 화산꽃동산은 자연에 가깝게 꾸민 인공 정원이다.
30여 년 전 개인이 약 33만m²(10만 평)의 야산을 사들여 가꾸고 있는 정원인데, 2~3년 전부터 입소문이 나면서 봄마다 철쭉꽃을 즐기려는 여행객의 발길이 꾸준히 늘고 있다. 아직 공식 관광지로 개방한 곳이 아니라서 입장료가 없는 반면, 주차장이 없어 도로 옆 마을 공터에 차를 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꽃동산은 이름처럼 입구부터 환상의 꽃길이다. 겹벚꽃 잎이 떨어지는 산책로 양쪽 산비탈을 황매화가 노랗게 장식하고 있다. 군데군데 연산홍이 섞여 색감이 더욱 진하다. 짧은 구간 전나무 숲을 지나면 단풍길이 이어진다. 햇살에 반짝이는 초록의 단풍잎이 싱그럽다. 단풍 터널을 통과하면 산중턱 경사면에 철쭉 정원이 펼쳐진다. 연분홍에서 진분홍까지 점진적으로 번지는 분홍의 물결 속에 간간이 흰 철쭉이 섞여 환상의 봄 풍광을 선사한다.
철쭉이 지고 나면 가지런하게 수형을 다듬고 있는 갖가지 조경수가 또 저마다의 매력을 뽐낼 것이다. 가꾸는 사람의 정성과 노력이 필수지만 정원을 완성하는 건 결국 시간의 몫이다. 해마다 성장해 갈 꽃동산의 미래가 더 기대된다.
<완주=글·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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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