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여성의창] 진달래 꽃

2022-05-09 (월) 김명수(버클리문학협회 회원)
크게 작게
몇 주 전이었다. 50년 동안 소식이 없었던 그리운 친구한테서 이메일을 받았다. 나는 이미 잊혀진 존재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연락이 오다니? 내 연락처를 몰라 여러 명의 동기들에게 물어보아 이제서야 나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냈다고 한다.

“너랑은 같은 서교동에서 살며 서로 고등학교, 대학교 때도 무척 가깝게 지냈는데 훌쩍 미국으로 가선 그렇게 깜깜 무소식일 수가 있는 거니? 난 아직 내과의사 현역으로 뛰고 있어.”

대학에서의 전공은 달라도 우리는 같은 명우문학 회원이었다. “명우들과는 40년 전 가끔씩 만나곤 했어. … 근래에 명우들간에 그룹카톡으로 서로 소식을 주고 받게 되었어. 그런데 내가 늘 보고 싶던 명수가 연락이 안되어….”


친구의 이메일을 읽으며 놀라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명우회원들의 얼굴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이렇게 문학이라는 끈으로 이어진 옛 문우를 찾으며 그리워하는 것 같다.

얼마 후 이 친구는 본인이 부이사장으로 근무하는 종합병원 사진도 보내고 그곳 글쓰는 사람들과 산행을 한 후 쓴 기행문 “반구대암각화”도 보내주어서 읽었다. 진입로를 놓쳐 일행과 떨어져 우여곡절 끝에 혼자 도착해야 했던 사연댐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용기를 내어 능선으로 올라간다. 산이 좀 가파르다. 군데군데 피어 있는 진달래는 색이 진하거나 연한거나 분홍색 농도가 다 제각각이다. 싱싱한 진달래를 계속 따먹으며 오른다. 국민학교 때 용인에 살 때 배고프면 하루종일 따먹던 게 진달래 꽃이었다. 얼마나 많이 따먹었으면 같이 간 친구의 입과 잇몸이 나중엔 다 퍼렇게 변해 있곤 했다. 드디어 능선에 오르니 좁은 산 길이 나타난다.”

친구의 기행문 일부를 옮긴 것이다. 배고프면 진달래 꽃 따먹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친구를 만나면 꼭 안아주고 싶어진다.

1970년 대학시절 52년생 명우 문학동아리 회원들의 책 출간 소식을 들으니 놀랍고 뿌듯해진다. 한 회원은 “낭만가객”의 수필집을 출간했고, 전 국회의원이었던 회원은 소설 “두브로브니크에서 만난 사람”과 최근에 “마요르카의 여인” 소설을 출간했다. 동아리 중 이대 법대를 나온 가까운 친구가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법대에서 교수로 일한다고 하여 놀랐다. 그녀의 이름으로 10여권의 책이 나와 있었다. 독일유학시 보내준 뮌헨의 엽서 사진이 특이해서 사진첩에 붙여 놓았었다. 동유럽 여행시 뮌헨을 구경하면서 친구가 보낸 엽서가 떠올랐었다. 마음속에 잠재하던 문학의 불씨가 글로 표현되어 책이 출간되는 것 같다.

나 또한 작년에 “감나무 속의 저녁노을” 에세이 책을 출간하여 무척 행복했었다. 50년 만에 소식을 전해준 친구도 고향 산천의 진달래 꽃도 몹시 보고 싶다.

<김명수(버클리문학협회 회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