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지금 어디선가 누군가가
2022-05-05 (목)
김관숙(소설가)
대부분 혼밥을 먹다 보니 식탁에 밥 동무를 초대한다. 다름아닌 예능프로다. 별로 집중할 필요도 없이 보면서 웃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예능프로라고 다 웃게 되는 건 아니다. 재미의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오래 전 온 가족이 즐겨 보던 프로가 있었다. 초보 아빠들이 아내에게 휴가를 주고 아기들을 재우고 먹이고 입히는 동안의 해프닝을 담은 영상들은 참 신선하고 재미 있었다. 바깥 일을 하느라 미처 몰랐던 아내의 수고와 사랑을 깨닫게 해주는 건전한 프로였다.
요즘은 미취학 아동들이 온갖 호강을 누리며 부모의 사랑을 받는 장면들을 방영하는 모양이다. 아동들을 위해 그렇게 다양한 놀이기구와 놀이터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 풍요로운 환경에서 우리의 꿈나무들이 성장한다는 사실은 반갑기 그지 없을 뿐 아니라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오지랖이 넓은 나는 마음이 다소 언짢아진다. 환경이 여의치 않은 이들, 어린이든 어른이든 그런 아이들이 화려한 연예인들의 넓고 화려한 거주 환경을 보면서 어떤 심정일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
어느 날은 놀이에 취한 아이들이 바닥에 흰 쌀을 한 부대나 쏟았다. 저런! 흙바닥이 아니니 잘 주어 담아 밥을 지어도 무방하겠지. 나의 이런 생각이 무색하게 젊은 엄마는 청소기를 밀고 오더니 미련 없이 몽땅 쓸어 버리는 게 아닌가. 그 대목에서 나는 또 오지랖이 넓어진다. 그 장면을 여과 없이 내보낸 PD에게 쓴소리 한마디쯤 하고 싶어서다.
1년 동안 애면글면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나 배를 곯으며 사는 이들에게는 그 장면이 얼마나 참혹할 것인가. 물론 현대는 물질이 풍요하다 보니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귀한 게 없다. 쌀 한 부대쯤이야……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또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배고픈 이들이 적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풍족하고 배불러서 행복하다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지금 세상 어디선가 누군가가 울고 있다.
세상에서 이유 없이 울고 있는 사람은
나 때문에 울고 있다.’
오랜만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음미해 본다. 내 가까이에서 누군가가 나 때문에 울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새삼스럽게 주위를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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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숙(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