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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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자신감과 자만감

2022-05-03 (화) 변임주(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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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캐나다 록키 마운틴 지역을 다녀왔다. 캘리포니아는 봄 날씨였지만 그곳은 여전히 얼어붙은 호수와 산에 눈이 쌓여 있었다. 코비드 락다운 이후 처음으로 가보는 여행이었다.

7월에 있을 내 생애 첫 하프마라톤을 위해서 달리기 운동을 시작하고 있는 시기였다. 이전에는 운동이라곤 동네 걷기가 전부였었다. 지인의 샌프란시스코 하프마라톤 사인업 소식을 듣고 덜컥 등록을 해버린 것이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뛰면 숨이 너무 차서 전혀 못할 줄 알았는데 훈련 프로그램을 찾아서 그대로 3개월 따라하니 그것도 할만해졌다. 이제 3km도 힘들지 않고 뛰는 변화가 왔다. 이런 고마운 변화에 나는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가족과 눈이 아직 많은 존스턴 캐년(Johnston Canyon)이라는 산에 가게 되었다. 눈이 안 녹은 등산길은 가드레일이 곳곳에 있어서 편리했지만 얼마 길은 많이 미끄러웠다. 이런 상황을 예상치 못했던 우리는 등산화 아닌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캐나다 본토분들은 등산화에 미끄럼 방지 클리츠를 달고 걸어가는데 우리는 미끄러워서 엉금엉금 조심스럽게 올라가야 했다.


그렇게 올라가서 본 겨울 폭포는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물은 안에서 흐르고 있지만 표면은 얼어붙어 있는 3-4층 빌딩에 얼음을 덮어씌운 모습이었다. 멋진 경치를 뒤로하고 내려가는 길은 더 막막했다. 가파른 산길은 얼어붙은 길에 더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한달음에 재빨리 뛰면서 내려와야 할 때도 있었다. 처음엔 내가 뛸 수 있을까 했는데 근래의 훈련탓인지 달음박질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한두번 달려오기를 이후 나는 이제 달리기 선수가 된 것 같았다. “이 정도는 어렵지 않지” 하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러던 차, 더 긴 내리막길에 도달했고 달음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속이 붙어서 정지하기 힘들어졌다. 브레이크를 걸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무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속도가 너무 붙어서 도리어 나무와 충돌하게 되었다. 부상은 다행히 얼굴이 살짝 긁히고 붓기가 있는 정도였다. 하마터면 큰 일이 날 수도 있었는데 이 정도면 다행이다. 아 내가 달리기를 잘한다는 자신감이 아닌 자만감에 빠져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도 그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 금방 얻은 자신감은 어느새 자만감이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실패가 정신을 바짝 들게 해준다. 이런 실패, 실수가 없이는 나를 객관화하기 힘들어서 더 큰 실수로 발전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나는 이런 작은 실수와 실패가 가끔씩 와서 나를 단단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변임주(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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