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이 무르익었다. 옛 고향, 뉴욕주 올바니(Albany)의 한 분이 페이스북에 올린, 수북히 쌓인 데크의 눈을 본 것이 불과 몇주 전인데, 이곳은 벚꽃도 한참 철이 지났고, 갖가지 꽃들과 신록의 나무들로 공기마저 초록색으로 눈이 부신 봄 날이다. 이맘 때면 생각나는 분이 있다.
이른 가을부터 집 뒤 언덕에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계단식으로 만든 그 온실과 밭을 오르내리며, 씨앗에 물을 주고, 채소의 모종이 자라면 크고 작은 4,000여 화분에 옮겨 심어, 주위 한인 가정들에게 7년째 모종을 나누어 주고 계신 분이다.
지난해엔 나도 상추와 풋고추, 토마토, 오이, 호박이며 깻잎 등 싱싱한 모종을 받아왔었다. 그러나 나는 햇볕이 고픈 콘도 이층에 사는 관계로 상추와 깻잎 몇 그루만 남기고, 오이와 토마토 풋고추 등 열매 맺는 모종들은 딸네 뒷마당에 가져다 심었고, 또 계단식 정원과 텃밭을 새로 만든 며느리까지 와서 나머지 두어 개 오이며 토마토 상추 등을 가져 갔었다. 딸은 늘 바빠, 어린 손주들에게 “1주일에 두번씩만 물을 주면, 용돈 두둑이 줄게!”라고 꼬셨었는데, 한번씩 가 보면 “I forgot, sorry!” 하기 일쑤였고, 때맞춰 사랑을 못 받은 채소들은 살기를 계속할지 말지, 여름내 안타까운 꼴이었다. 그래도 내 베란다에 심었던 상추와 깻잎은 잘 자라주었고, 며느리도 오이와 상추 토마토 기르는 재미를 보았다고, 금년에도 기대해도 되냐고 물어온다.
봄부터 가을까지, 골프를 사랑하는 친구에 못지않게 까맣게 탄 채, 텃밭에서 종일 채소를 기르며, 행복했었던 동부에서의 삶이 생각난다. 크지도 않은 텃밭이었는데, 부추며 고추 오이 호박 가지 아욱까지 미처 다 먹지도 못하는 채소들을 매일매일 가꾸며, 모기 때문에 깻잎은 미처 따서 돌리기도 벅찼던, 기쁘고 뻐근했던 추억이다.
지금은 모두가 팬데믹으로, 또 참담한 전쟁의 소식으로 몸도 마음도 괴롭고 힘든 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근 각지 한인들에게 사랑의 모종들을 나눠 주시고, 그 수고의 결과로 멀리 선교비까지 보내며, 묵묵히 살아가시는 그분의 따뜻한 삶으로 조금은 살맛 나는 사랑의 계절,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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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옥씨는 숙명여고, 이화여대, 버팔로 뉴욕주립대를 졸업하고, 뉴욕 미주 이민 문학경연에서 수필 ‘뻐근한 행복’으로 당선됐다. 2021년 10월에는 ‘나의 시, 나의 라이프’를 출간했으며 현재 로스 알토스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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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옥(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