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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칼럼] 공화당은 여전히 부자들의 정당

2022-04-27 (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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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필자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의존도가 높아진 국제무역 탓에 독일을 비롯한 일부 서방국들이 전제주의에 정면으로 대응하기를 꺼렸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독일은 블라디미르 푸틴에 무력한 반응을 보이는데 그치지 않았다. 독일과 다른 유럽 국가들은 빅토르 오르반이 민주주의를 해체하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모자란 듯 헝가리에 지속적인 경제적 지원을 제공했다.

필자의 이런 지적에 많은 유럽인들은 미국의 민주주의 또한 위협에 처해있고, 미국의 일부 우익 정치인들은 오르반과 다를 게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필자가 말하려는 요점은 그것이 아니었다. 예컨대 론 드산티스는 할 수만 있다면 플로리다의 오르반이 될 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그러나 주지사들은 주권국가의 통치자들만큼 강압적인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유럽과 미국 민족국가주의자들(ethnonationalists)의 비교는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한다. 특히나 공화당은 완전한 반민주주의 정당이 됐으면서도 무슨 이유로 재력가들의 정당이자, 숱한 근로계층 지지자들을 위한 정책에 각을 세우는 정당으로 남아있는 것일까?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프랑스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마린 르펜의 정책기조를 들여다 보아야한다. 국민전선의 후신이자 마린 르펜의 소속정당인 국민연합은 흔히 우익으로 분류된다. 사회문제에 관한 한 국민연합은 우익이 맞다. 특히 이민자들에 적대적인 이 정당은 이들이 프랑스의 민족적 정체성에 위협을 가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정책 면에서 르펜은 에마뉘엘 마크롱보다 더 좌측에 서있다.

여기서 전후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프랑스는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이 꿈조차 꾸지 못할 수준의 사회보장 혜택을 제공한다. 전국민 의료보험제와 가족지원제도 등 사회보장 시스템은 미국의 그것과는 아예 비교가 안 된다. 마크롱은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을 흔들지 않으려 한다. 다만 은퇴연령을 올리는 등 약간의 손질을 가하고 싶어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르펜은 일부 근로자들의 은퇴연령을 낮추기 원한다.

르펜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만약 그녀가 승리한다면, 프랑스와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 끔찍한 파장이 밀어닥칠 것이다. 그러나 르펜이 내세운 정강 중에는 노동자 지원정책을 옹호하는 진정한 의미의 포퓰리즘이 부분적으로 담겨있다.

이제 이것을 유력한 미국 공화당 정치인들의 정책기조와 비교해보자. 필자는 공화당의 공식적인 경제정책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 공화당이 내세우는 경제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화당은 재집권할 경우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선 입을 굳게 다문다.

그러나 우리는 공화당이 마지막으로 집권했을 당시 어떤 일을 벌였는지 잘 안다. 부유층에 막대한 세금감면을 해주었고, 오바마케어를 폐기하는데 거의 성공하면서 수천만 명에 달하는 미국인들이 의료보험을 잃을 뻔한 위기 상황을 초래했다. 이렇게 보면 공화당이 권력을 재장악한 후 반-근로자, 친-재력가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 믿을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

주 차원에서 참담한 실패로 끝난 캔자스의 실험은 부유층 감세의 마법에 관한 공화당의 신뢰를 흔들어놓지 못했다. 미국의 가장 빈곤한 주이자 주민들의 평균 기대수명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미시시피주는 지역 병원들이 붕괴에 직면한 상태이면서도 소득세를 인하하려든다.

최근 플로리다 출신 상원의원으로 전국 공화당 상원 선거대책위원회의 지휘봉을 잡은 릭 스캇은 소득세 면제를 받는 저소득자들의 절반에 대해 세금을 인상하자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미국 구조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그는 아무런 보완책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가 파산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잘못된 경고를 내놓았다. 공화당 지도부는 스캇의 아젠더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그들의 진짜 아젠더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았고, 스캇을 상원선거 캠페인 수장으로 남겨놓음으로써 그의 견해가 당 내부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이 모든 것은 공화당이 여전히 친-부유층, 반-노동자 정당임을 시사한다. 유럽의 우익 정당들과 달리, 공화당은 실질적인 포퓰리즘을 지향한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마도 부분적 대답은 공화당이 ‘엘리트층’을 공격하면서도 재력가들의 비위를 맞추는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재력가들과 정실자본주의자들에게 잘 보이는 것이 선거 기부금이라는 가시적인 형태의 보상뿐 아니라 개인적 부의 축적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화당은 이 같은 보상 추구에 따른 대가를 전혀 치르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공화당 지지자들이 비판적 인종이론의 공개적 논박과 얼토당토않은 음모론에 관심을 집중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화당원들의 거의 절반은 민주당 고위 정치인들이 아동 성 착취를 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믿는 반면 거부들을 위해 그들의 소속정당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는 의식조차 하지 못한다. 재러드 쿠슈너가 사우디와 의심스런 20억 달러 규모의 거래를 체결했다는 뉴욕타임스의 폭로가 나온 후 폭스 뉴스는 이를 완전히 무시한 채 헌터 바이든에 관한 보도만 주절주절 내보냈다.

필자는 이 같은 냉소주의가 역풍을 불러올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특히 민생문제에 초점을 맞춰 선거운동을 펼치기 원하는 민주당 의원들은 실제로 누가 그들의 빵에 버터를 발라주는지 유권자들이 알 것이라 가정한다. 하지만 그건 결코 안전한 가정이 아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현재 뉴욕 시립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미국내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MIT에서 3년 만에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타임스 경제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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