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크 A. 시쎈 칼럼] 트럼프 승리를 파괴하는 백인 우월주의자들

2025-11-28 (금) 12:00:00 마크 A. 시쎈 /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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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커 칼슨이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반유대주의자인 닉 푸엔테스를 보수 운동의 주류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도덕적으로 혐오스러울 뿐 아니라, 보수 진영에게는 정치적 자살로 가는 길이다. 칼슨의 푸엔테스 ‘정상화’를 옹호하거나 변호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단 하나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다수파 운동이 되고 싶은가, 아닌가?

보수 세력은 소수 인종 유권자들에게 호소하지 않고서는 지속 가능한 다수파를 만들 수 없다. 그리고 백인 민족주의자들을 받아들이는 한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추정치는 다르지만, 해리스는 백인 남성 유권자층에서 두 자릿수 차이로 패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 인구집단에서 새로운 성과를 얻지 못한 만큼, 트럼프 역시 그렇지 못했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트럼프는 2024년에 얻은 백인 남성, 그리고 전체 백인 유권자 비율은은 2016년과 2020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2024년에 8년 전보다 훨씬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모든 경합주에서 승리하고, 전국 득표수에서도 앞섰다. 득표율이 49.9%로 아슬아슬하게 과반에 미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2016년과 2024년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는가? 간단하다. 트럼프의 정치적 귀환은 소수 인종 유권자들 사이에서의 큰 폭의 지지 확대에 힘입은 것이다.

2020년 트럼프는 히스패닉 유권자의 36%를 얻었다. 2024년에는 48%를 얻었다, 무려 12%포인트 상승이다. 2020년 트럼프는 아시아계 미국인 30%의 지지만 받았다. 2024년에는 40%를 얻었다. 흑인 유권자층에서도 지난 8년간 지지율을 6%에서 15%로 두 배 이상 끌어올렸고, 흑인 남성에서는 거의 4분의 1을 얻었다. 트럼프는 유대인 유권자층에서도 11%포인트 상승했다. 2016년 24%에서 2024년 35%로 뛰었다. 공화당 유대인연합(RJC)에 따르면, 현재 유대인 유권자의 31%가 공화당을 지지한다고 답했는데, 이는 기록상 가장 높은 수치다.

트럼프는 합법적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지지 확대를 이뤘다. 그는 2024년에 귀화시민의 47%를 얻었는데, 이는 4년 전보다 9%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해리스는 귀화시민 유권자의 51%를 얻어 근소하게 앞섰지만, 트럼프는 2020년에 투표하지 않았던 신규 귀화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압도적인 57%를 얻었다. 백인 귀화시민 55%, 히스패닉 51%, 아시아계 46%로 모두 두 자릿수 상승이었다. 반면 2020년 바이든은 귀화 시민층에서 21%포인트 차이로 앞섰었다.

다시 말해, 트럼프의 2024년 연합은 2016년이나 2020년보다 훨씬 더 인종적·민족적으로 다양했다. 사실 트럼프는 거의 모든 주요 인구집단에서 지지를 끌어올렸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2016년과 2020년에는 얻지 못했던 전국 득표 승리를 2024년에는 거둘 수 있었다.

정상적인 정치 운동이라면 이런 성공을 축하하고 더 확대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보수 진영 일부는 백인 민족주의자들을 용인하거나 심지어 끌어안음으로써 이 새 지지층을 내쫓으려는 듯 보인다. 이는 역겹고도 광기 어린 일이다. 끔찍한 인종차별주의자를 우리가 비난하지 못한다면 공화당이 소수 인종 유권자들에게서 얻은 지지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칼슨이 백인 우월주의자를 주류화하려 한다고 그를 비판하기는커녕, 일부는 칼슨에게 반대하는 보수파들을 공격하고 있다. 해리티지재단의 케빈 로버츠 회장은 칼슨 비판자들이 “독을 품은 연합”이며 보수진영 내 “분열을 조장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보수 사상가 중 하나인 프린스턴 대학의 로버트 P. 조지 교수가 칼슨을 옹호한 발언을 철회하지 않은 로버츠의 태도에 항의해 해리티지재단 이사회에서 사임하기도 했다. 물러나야 할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푸엔테스·칼슨·로버츠에게는 자리가 있는데 로비 조지에게는 자리가 없는 보수 운동은 더 이상 보수적이지도 않고, 더 이상 정치적으로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정치는 덧셈의 게임이지 뺄셈의 게임이 아니다. 트럼프가 소수 인종 유권자들을 더 많이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식의 독성 정체성 정치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자존감·이익·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에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불법 이민에는 매우 강경했지만, 전체적으로 더 합리적이고 검증 절차가 강화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합법 이민에 관해서는 제한주의(restrictionism)를 채택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폭넓고 다인종적인 보수 다수파를 구축하는 올바른 방식이다. 그런데 백인 민족주의자들이 민주당을 따라 하듯 자신들만의 배타적 정체성 정치로 트럼프가 쌓아 올린 연합을 파괴하도록 우리가 허용한다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노골적 인종주의자들을 우리의 운동에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파괴를 야기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마크 A. 시쎈 /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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