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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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충분히 잘하고 계세요

2022-04-26 (화) 변임주(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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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던 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태어난 딸이 복이 많은가 봐” 하셨단다. 왜? 그날 장사가 잘 되었기 때문이다.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은 나의 최애 이야기. 이 얘기가 생각나면 마음에 따뜻한 불이 켜진 것 같고 긴장이 스르륵 풀린다.

미국으로 온 지 10여년이 넘었고 논리를 따지는 기술개발자를 업으로 삼아와서 한때 절대적 평가가 존재하고 흑과 백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내가 대부분 맞는 말을 하고 일을 잘한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첫 사업은 나홀로 사업만으로 끝났었고 회사 내에서도 부딪히는 일을 많이 만들었던 것 같다. 더 힘들었던 것은 그런 상황에서 나는 나에 대한 평가와 자책을 함께 내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사업이 잘 안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순간이 있었다. 수많은 성공 사례로 나날이 도배되는 실리콘밸리에 살아서인지 비교가 되면서 이 결과에 대해서 내 자신에게 ‘너는 왜 여기까지 밖에 못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 날카로운 잣대가 독함이라는 형태로 시작할 때는 어느 정도까지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나의 멘탈이 탈탈 털리면서 우울증까지 만드는 것 같았다. 그때 ‘이건 너무 힘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독하게 나를 미는 것보다 나를 포용도 해야 하는 시기인 것을 깨달았다. ‘그래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야. 나도 최선을 다했어’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생각의 전환이 며칠 멍하니 누워 있던 나를 일으키고 밖으로 나가 걷게 만들었다.

지금은 많이 회복이 되었고 그런 경험을 겪은 후에 나를 자주 돌아보며 균형감 있는 사고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전환의 시발점은 우리 부모님이 말씀하신 ‘나는 운이 좋다’라는 생각이었다. 그런 불씨가 나를 일으켜 주었던 것처럼 힘든 상황을 겪을 때 누군가 나를 믿어주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누군가를 믿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믿음이 버팀을 만들고 편하게 받아들여 변화하는 힘을 주는 것이다.

그런 차에 미국에서 경력단절된 한인 여성의 사회복귀를 돕는 ‘심플스텝스(SimpleSteps)’를 만나게 되었다. 기술 관련 수업을 진행하면서 더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한인 여성분들은 잘하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전 아직 멀었어요”라는 대답이 습관처럼 나온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계세요”라고 전한다. 늘 부족함을 느끼는 분들께 이렇게 응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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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임주씨는 숙명여대 수학과 학사, 카네기멜론대(CMU) 정보통신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부문 경력 20년차로 여성의 사회진출에 관심이 많은 엔지니어이다.

<변임주(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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