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나이와 미국나이

2022-04-26 (화)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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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옛 직장동료가 이색 파티를 열었다. “일흔 살 되는 게 끔찍하게 싫어서” 60대가 끝나기 전에 선후배 및 친지들과 함께 아쉬움을 달래고 싶었단다. 이미 손녀와 손자를 둔 할머니인 그녀는 그날 파티가 자신의 생일과 관계없는 ‘60대 고별 이벤트’라고 말했지만 참석자들은 당연히 그녀의 칠순잔치로 받아들였다. 한 살 먼저 먹는 한국의 전통적 나이 셈법에 따라 고희연도 대개 69세에 쇠기 때문이다.

그녀와 생일이 비슷한 나는 그 무렵 산수연을 치러야할 상황이었다. 올해가 내 팔순임을 나보다 먼저 일깨워준 친구가 있었다. 생일 직후 한국의 여동생에게서 “팔순잔치 잘 치렀느냐”는 축하인사도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년처럼 아들가족과 함께 동네식당에서 점심 먹는 걸로 산수연을 대신했다. 환갑은 61세에 제대로 치르면서 칠순 이후 모든 생일을 마치 가불하듯 한 해 앞당겨 치르는 게 불만이었다.

지난 보름간 집안 일로 한국을 방문했다가 고교동창생 10여명과 50여년 만에 해후했다. 대개 젊은 시절 얼굴 윤곽이 어렴풋이 남아있었지만 도대체 누군지 알아보기 어렵게 팍 늙은 친구도 있었다. 기이하게도 학창시절엔 서로 나이가 많다고 침을 튀기며 다투던 녀석들이 이젠 서로 나이가 적다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젊다고, 우겨댔다. 원래 한국식 나이로 셈했지만 이젠 미국식 나이가 타당하다는 논리였다.


나이를 밝힐 때 한인들은 대개 “한국나이로 00살, 미국나이로 00살”이라고 말하지만 미국인들은 “지난 X월에 00살이 됐다”는 식이다. 태어나자마자 한 살 먹고 해마다 한 살씩 추가하는 한국나이 외에 현재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연 나이(햇수 나이)와 만 나이(미국나이)도 사용된다. 2018년 12월 출생한 아이들은 이제 한국나이로 5살, 연 나이로 4살, 만 나이로 3살이 돼 최대 2살까지 차이 날 수 있다.

전 세계에 유례없이 뒤죽박죽인 한국인들의 나이가 드디어 미국식 나이(만 나이)로 통일될 전망이다. 위의 어린이들은 모두 3살로 정리돼 최고 2살이 줄어든다. 내 고교동창생들의 연령서열(?)도 자연스럽게 평준화돼 이미 산수연을 치렀다고 뻐겼던 녀석들의 코가 납작해질 터이다. 앞으로는 고희와 산수는 물론 망구(81세), 미수(88세), 졸수(90세), 망백(91세) 백수(99세) 등도 만 나이로 치를 공산이 커졌다.

현재 통용되는 세 가지 나이계산법 중 출생일을 0살로 기준삼아 매해 생일에 한 살씩 더해가는 만 나이로 통일하자는 얘기는 원래 윤석열 대통령당선인의 선거공약이었다. 1960년 12월18일생인 윤 당선인은 한국나이로 63살이지만 만 나이로는 61살이어서 역시 2살이 줄어든다. 한국정부는 1962년부터 세금 등과 관련된 법률의 납세자 나이기준을 만 나이로 공식화했었다. 하지만 일반사회에서는 세 가지 나이 계산법이 혼용돼왔다.

나이계산보다 더 혼란스러운 게 수명계산이다. 중국 고대설화의 삼천갑자 동방삭 나이가 그렇다. 한번 넘어지면 3년밖에 못 사는 ‘3년 고개’에서 동방삭이 수천번 굴러 삼천갑자(18만년)를 살았다는 것이다. 설화 아닌 ‘무오’의 성경에도 969년을 산 므두셀라, 950년을 산 노아 등 수퍼맨 얘기가 나온다. 크리스천들은 이를 믿는다.

현대인 수명의 한계치를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 모세 얘기도 성경에 등장한다. “인생은 60세, 강건해봤자 80세지만 세월이 참으로 빨리 날아간다”며 한탄한 모세는 그보다 40년이 더 긴 120년을 살았다. 학자들은 당시 태양력이 아닌 월력이 사용됐고 십진법에 따라 1년을 10개월로 정했을 것이라는 등 추론을 통해 모세가 120세를 산 것은 한국나이나 만 나이를 원용하지 않아도 가능했다고 말한다.

한국정부가 나이계산 기준을 만 나이로 통일하면 한국노인들의 나이도 최대 2살까지 줄어든다. 정년퇴직이 다소 늦춰지는 효과 등 밝은 면이 있지만 ‘인생 100세 시대’에 합류하기가 그만큼 어려워질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모든 노인들이 나이가 줄거나 무작정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주 고교동창생들과 외친 건배사가 구태의연하게도 ‘구구팔팔이삼사’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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