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이상 미국에 살면서 영어로 대화하고 영어로 된 서류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도 아직도 한국어로 쓰여진 글을 읽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특히 문학 작품 읽을 때가 그렇다. 가끔씩 영어로 쓰여진 소설과 에세이를 흥미롭게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본다. 영어로 쓰여진 시는 어떠한가? 문화와 정서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기에 시인이 쓴 단어가 마음에 다가오는데 시간이 걸리는지도 모른다.
“Worm, be with me. This is my hard time.” 퓰리처상을 받은 시인 시어도어 레트키(Theodore Roethke)의 시이다. 이걸 시라고 썼나? 어떻게 이런 시를 쓰는 사람이 퓰리처상을 받았지? 하고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하물며 내가 영시를 썼다고 하면 더할 것이다. 이걸 시라고 썼어? 남들이 어떻게 볼까 하면서 움츠려 들게 된다.
“벌레야, 내 곁에 있어 줘. 지금 내가 아주 힘들거든.” 얼마나 외로웠으면 벌레에게까지 내 곁에 있어달라고 말하고 있는가? 영어로 읽을 때는 평범하게 쓰여진 시가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글로 읽으면 마음이 짠해진다. 여기서 번역 문학가의 재능을 느낀다. 그가 번역한 잠언시를 읽으면 원래 시를 쓴 시인의 정서와 세계관 메시지가 감동있게 전해진다. 류시화 시인은 천재적인 시인의 재능이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 번역한 잠언시가 읽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와 감동을 일으키기가 불가능하다고 본다.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작품으로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 등을 말한다”고 사전에 쓰여 있다. 2018년부터 버클리문학협회 회원이 되었다. 권영민 교수님, 김완하 교수님, 이재무 시인님 등 초청강사님으로부터 강의를 들으며 시와 수필을 틈틈이 쓰고 있다.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는 번역 문학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처음부터 영어로 시를 쓰기보다는 한국어로 지은 후 영어로 번역하여 옮겨본다. 그렇게 지은 "빗소리(Sound of Raindrops)” 시가 “2020년 베스트 시인”의 한명으로 뽑히며 Eber & Wein Publishing에 실렸다. 앞으로 더 많이 쓰고 다듬고 해야겠지만 내가 쓴 시를 영어로 적은 후 남들이 어떻게 볼까 하면서 움츠러들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맹인가수 스티비 원더가 한 말이 떠오른다. “We all have ability. The difference is how we use it.” “우리 모두는 능력이 있습니다. 다른 점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입니다.”
==
김명수씨는 현재 캘리포니아주 약사로 근무중이며, 버클리문학협회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2013년 장편 추리소설 ''잎새 위의 이슬", 2021년 에세이 "감나무 속의 저녁노을'을 출간했다.
<
김명수(버클리문학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