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인생의 라운드 어바웃(회전교차로)
2022-04-21 (목)
이미경(발레 안무가)
미국과 영국의 도로를 보면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하나 있다. 동서남북에서 차가 오가는 교차로에 미국은 신호등을 중심으로 한 교차로가, 영국은 동그란 모양의 회전교차로(roundabout)가 있다는 것이다. 유학시절 영국의 이런 교통시스템은 운전자가 오른쪽에 앉아야 하는 것과 함께 엄청난 이질감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한 살, 두 살 먹다보니 이전에는 불편하게 느껴지던 회전교차로에 참 많은 철학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저 교차로는 신호등에 의해서 통제되며 만약 길을 잘못 들어섰다면 교차로를 통과한 후 먼 길을 돌아 다시 원하는 길로 가야 하는 단점이 있다. 또한 사람들이 신호를 철저히 지키지 못하면 사고가 나기 쉽다. 모든 탓이 신호등으로 향하며 사람들은 신호의 사각지대에 남겨지지 않으려고 신호등이 있는 앞만 바라봐야 한다. 최소한 교차로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라운드 어바웃(회전교차로)에서는 동그라미를 그리며 돌다가 자신이 나가야 하는 구간 조금 전에 방향등을 켜고 서서히 바깥차선으로 나가다보면 어느새 내가 나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와 있음을 보게 된다. 이 시스템은 신호나 다른 규칙보다 인간의 융통성을 더 신뢰하는 방법으로 보인다. 좀 어리석게 보여도 이런 회전교차로에서는 사고가 적다. 왜냐하면 만약 내가 나가고자 하는 방향을 놓치면 한 바퀴 더 돌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길을 모르면 계속 돌고 있어도 된다.
이 교통시스템은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도 닮아 있다. 삶이 직선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삶이 교차로처럼 여겨질 것이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뭔가 도전하기보다는 안전하고 확실한 길을 찾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실패할 시간도 잠시 옆을 돌아볼 시간도 없다. 실수없이 앞으로 전진해 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선택을 하든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좀 더 돌아갈 뿐이다. 삶을 회전교차로로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미디어에서 떠들어 대는 것처럼 그렇게 좌절하고 힘들어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실수는 실패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에서의 창의성이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회전교차로를 돌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을 찾을 때까지 제자리를 돌고 또 돌아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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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발레 안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