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인 1983년 10월에 당시 국토통일원이 주최한 ‘전국대학생 통일 논문대회’가 전남대학교에서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100여명의 대학생, 대학원생들이 참가한 대회였다. 필자도 ‘남북한 통일방안 비교분석을 통한 한반도의 미래’라는 논제로 그 당시 국제사회의 격동, 즉 등소평에 의한 중국의 개방화, 러시아의 페레스 트로이카, 동구권의 개방화가 북한의 테크노크라트(신지식층)를 움직여 북한의 개방화를 이끌 수도 있겠다는 20대 패기어린 대학생으로서 호기심 수준의 추론(?)을 정리했다.
그게 어떻게 최우수 논문으로 평가받았다. 지나고 보니 그 가설과 추론이 보기좋게 빗나가 버렸지만 그 일은 개인적으로 민족 통일에 대해서 가장 진지했던 한때로 남아 있다.
인생의 느지막에 민주평통협의회의 중책을 맡고 보니 지난 40년동안 한반도 주변 정세는 너무나도 복잡다기하게 변해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비통일(非統一: 통일이 되거나 말거나)’적인 행동들이 생활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우리의 주변 일상에서 통일보다는 하위 개념인 아주 조그만 소통합들마저 이루는 게 그다지도 힘이 드는데 민족적 통일을 논하겠다는 게 좀 그렇다.
그것은 각 개인들의 저변에 깔린 자본주의적 잠재의식중에 정제되지 못한 크고 작은 ‘경쟁’에 대한 몰이해의 누적으로 사회각층의 이해관계나 합의, 통합의 가치들이 그 필요성을 상실해 버린 게 현실이자 원인이다.
70, 80년대 고성장 시대에 가계, 기업, 정부중 한국의 대기업들은 그 성장의 최일선을 선도하고 있었다. 기업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경쟁력, 효율같은 ‘혁신 아젠다’를 학계가 뒤이어 연구하고, 그것을 공무원사회가 뒤따르는 식이었다.
기업은 이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 어느 누구도 살아 남지 못한다. 절박했지만 그러나 그 경쟁을 ‘신사적, 운명적’으로 승화시켰다. 경쟁 상대를 상호 존중하고 벤치마킹하고 때로는 정보도 공유하는 페어플레이도 있었다. 경쟁 이후까지를 염두에 두고 경쟁했던 ‘여유나 격조’ 같은 게 있었다.
1956년 조미료가 아주 생소할 시기에 ‘미원’이 시장에 선을 보였다. 일등주의 삼성의 제일제당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1963년 제일제당은 미풍울 출시하여 경쟁에 돌입하는데 1975년 제일제당이 ‘다시다’를 재등장시키자 각 지역 대리점끼리 패싸움을 할 정도로 떠들썩하게 시장점유율을 놓고 경쟁하였다.
결과는 ‘제일제당은 이병철의 일부지만 미원은 나의 전부다’라고 맞선 임대홍의 미원이 승리한다. 삼성의 가격덤핑전략에 맞서서 미원은 거꾸로 가격을 올려버리자 미원의 소비자 선호도가 더 올라가 버렸던 일화는 유명한 기업전쟁사중의 백미로 꼽힌다. 승패는 갈렸지만 조미료 시장은 3배가 확장되어 양사가 윈윈했다. 훗날에 고 임대홍의 손녀(임세령)와 이병철의 손자(이재용)가 결혼한다.
원양어업회사인 동원산업은 어물전에 굴러다니던 참치를 캔에 담아서 시장에 내놓았다. 그 소비성이 시장에 반영되자 오양수산과 사조산업이 이 참치캔 시장에 뛰어든다. 한때는 명절 선물세트의 절반이 참치 캔박스였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시장이 확대되어 세 회사 모두 경쟁 덕분에 대기업군을 이루게 된다.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해 버렸지만 간첩선이나 간첩조직 일망타진 소식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일이었다. 플랭카드 만들어서 학교나 거리에서 ‘궐기대회, 웅변대회’를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공무원 부패소식이나 선거가 그 왁자지껄 간첩소식에 묻혀 어느새 지나가 버렸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남북한 위정자들에 의한 남북한의 소위 ‘적대적 공생관계’ 를 알면서도 속고 모르면서 지나갔다. 그렇게 허송해 버렸으니, 죽는 게 세월이요, 쌓이는 게 민족의 한이다.
이제는 이런 거 좀 하지 말자. 이제는 국민들이 아주 조그만 경제적 불편도 감수할 인내심마저 보이지 않는다. 수십억 아파트에 붙는 몇 푼의 재산세나 어느 집 자식 대학 진학하는 것 하나하나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세상이다.
익히 아는 상식이지만 한국경제의 대외의존도, 즉 수출이 GDP의 100%를 넘나드는 수출입 위주의 경제구조하에서 국제상황을 영리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폭망해버릴 수가 있다. 2020 한국의 주요 수출국을 보자. 중국(26%), 미국+일본(14+5=19), 베트남(8)순이다. 기업들이 가슴 졸이고 있다. 한미일:북중러 상태가 강화되면 될수록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높아지고 통일의 길은 더더욱 요원해 진다.
주변의 상대를 ‘적’으로 간주하고 대하는 경우와 ‘경쟁상대’로 대하는 것은 상황이 다르다. 경쟁상대가 많은 것은 나에게 유리할 수도 있지만 적을 많이 만드는 것은 좋을 게 하나도 없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것은 적에게 하는 짓이요, ‘상대도 살고 나는 더 잘 산다.’의 세상이 바로 ‘사람사는 세상’인 것이다. 이런 개념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통일도 못보고 세상을 등지는 수많은 민족구성원들에게 살아있는 마음이 오늘도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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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민주평통위싱턴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