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이 사람 잡네
2022-04-13 (수)
남상욱 경제부 차장
과거 학창시절 친구들과 ‘엥겔지수’라는 것을 놓고 서로 비교하는 일들이 많았다. 엥겔지수는 가계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엥겔지수가 높으면 가계의 수입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친구네 집보다 엥겔지수가 높으면 ‘못사는 가난한 집안’으로 낙인 찍힐 것 같아 친구 사이에서도 엥겔지수를 공유하는 일은 일종의 금기였던 시절이 있었다.
엥겔지수를 다시 소환하는 까닭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고공 행진을 하는 현재의 상황 때문이다. 요즘 ‘올라도 너무 올랐다’라는 말은 어떤 대화에서도 빠지지 않아 이제 진부한 클리셰가 되었다. 사실 미국의 물가 상승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연방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에 비해 8.5% 급등했다. 전월 대비로도 1.2% 오르며 1981년 12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인상률을 기록했다. 41년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물가에 비해 급여 상승폭은 거북이 걸음이다. 지난 2월 미국 임금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31.58달러로 전년 30.04달러보다 5.1% 증가하는 데 그쳤다. 8.5%의 물가 상승보다 적은 임금 상승으로 실질 임금은 오히려 줄어들고 말았다. 임금은 올랐지만 인플레이션 때문에 더 쪼그라든 것이다.
체감 물가는 지표상 물가 상승을 넘어서고 있다. 식당의 음식값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 점심 한끼 해결하는 데 20달러 정도는 갖고 있어야 가능하다. 1주일에 1번 마켓에 장을 보는 것도 예전 같으면 100달러 이하에서 샤핑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150~200달러를 훌쩍 넘기고 있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장기화로 접어들자 곡물과 원유 등 각종 원자재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물가 상승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와 전쟁의 여파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갖고 있는 문제는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격차를 늘린다는 것에 있다. 물가는 상승하지만 물가 상승분을 그때그때 임금에 반영하는 게 아니라 1년에 1번 정도 연봉 조정시 반영된다. 그렇다고 물가 상승분을 모두 인정해 임금을 올려주는 고용주는 드물다. 이에 반해 임금을 지급하는 고용주는 그만큼 이익을 얻는다. 임금 노동자에게서 자본가에게 이익이 전이되는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충격은 세계 각국의 정치적 문제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파키스탄 의회는 지난 10일 임란 칸 총리의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경제 불안과 부패 척결 등의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책임이다. 칸 총리는 불신임에 불복하고 있어 정치적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스리랑카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관광객 급감에 이어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며 통화 가치가 최근 1달 사이에 40% 가량 추락해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집트는 보조금 지급 대상이 아닌 빵의 가격이 뛰자 최근 가격 상한선을 정해 임의로 올리지 못하도록 했다. 이라크의 남부 도시 나시리아와 중부 바빌 주에서는 밀가루 등 식품 가격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이지기도 했다. 남미도 인플레이션 몸살을 앓고 있다. 페루에서는 에너지 가격 상승에 반발한 트럭 운전기사들의 시위가 반정부 시위로 발전했다.
미국도 인플레이션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살인적인 물가 상승을 놓고 조 바이든 대통령의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지지율 하락과 함께 오는 11월 중간선거 결과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바이든 대통령이 자산 규모 1억달러 최상위 소득층에 대해 미실현 소득까지 세금을 물리는 ‘억만장자 최소 소득세’를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예전의 일상으로 회복할 것이라는 희망은 인플레이션으로 유보된 채 표류하고 있다. 결코 예전의 일상으로 갈 수 없다는 비관론까지 나오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다.
그래도 숨막히는 경제 상황에서도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희망이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그의 저서 ‘희망의 원리’에서 인간은 빵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희망을 먹고 산다고 말했다. 희망으로 2년의 코로나19 시대를 버텨냈듯이 사람 잡는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버텨내고 있는 것 또한 그 희망 때문이다. 장차 올 그 희망의 시대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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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