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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입양견 세이리

2022-04-12 (화) 이은경(산타크루즈 코리안 아트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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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리는 우리집 강아지 이름이다. 우리 가족과 11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했다. 정원에 잔디를 깔기 위해 가든 센터에 다녀온 남편이 멋진 개를 입양하라는 광고를 보았다며 한번 보러 가자는 것이었다. 나는 강아지 키우는 게 애 하나 더 키우는 것만큼 정성과 사랑이 필요한데 누가 밥 주고 똥 치우고 할 거냐고 반대를 했다. 그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둘째가 자기가 다할테니 한번만 가서 보자고 사정을 했다. 할 수 없이 남편, 둘째와 함께 강아지가 있는 집으로 갔다.

이 집주인이 이 강아지를 입양했는데 다른 강아지와 잘 지내지를 못해 광고를 내었다고 했다. 이 강아지는 5살, 즉 인간 나이로 35살 정도로 장년 개였다. 호주산 양치기 개(Aussie)인데 농장에서 자라 일하다 들판에 버려진 유기견이었다. 들판에 묶어 홀로 버려진 이 개는 많은 짐승들의 공격을 받았을 것인데 살아남아 구조되어 수의사의 치료와 보호를 받다 입양된 것이었다.

그 집주인의 이야기를 듣는데 신기하게도 이 개가 나를 보고 눈으로 '날 데려가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꼬리가 없었고 한쪽 눈 반은 파란색과 갈색이었고 털은 흰색 검정 회색이 섞여 있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나를 보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입을 벌리고 웃는 것처럼 느껴지고 왠지 모르게 끌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래 우리집으로 가자." 그 말이 끝나자 마자 이 개는 우리 미니밴에 덥석 뛰어올라 앉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알았지만 이 개는 인간의 4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영리한 개라는 걸 알았다.


우리는 이 개의 이름을 세이리라 지었고 10여년 동안 사랑을 나누며 잘 지냈다. 우리 두 아이가 대학에 간 후 세이리가 15살 반, 즉 인간의 나이로 백살을 훨씬 넘어서 수의사가 오기 몇 분 전에 스스로 천국으로 갔다. 수의사도 이런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라 했다.

둘째가 정이 많이 든 세이리를 안락사 시키는 걸 반대하다가 그녀가 너무 힘들게 숨을 쉬는 것을 보고 안락사 시키는 것에 동의를 했는데 수의사의 손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우리 가슴을 아프지 않게 하고 떠난 영특한 세이리. 그녀는 우리집 사과나무 아래 잠들었다.

내가 어려서 한국에서 자랄 때는 개가 무서워서 개와 정이 든다든가, 가족이 된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는데 미국에서 처음 만난 유기견 세이리는 우리 가족이 되었고 개가 얼마나 주인에게 충실하고 영리한 동물인지 그녀를 통해 배웠다. 4월이 오면 세이리가 우리를 기다리며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 있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이은경(산타크루즈 코리안 아트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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