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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감사하는 문화

2022-04-07 (목) 이미경(발레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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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런저런 일로 아이들과 이곳 런던에 와 있다. 일주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새로운 장소, 다른 시간 속에서 그간 일상에 치여 살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체감하는 중이다. 브렉시트를 통해 고립되고 우울해졌을 거란 예상과는 달리 그 콧대높던 영국인들은 눈에 띄게 친절해졌고 마치 삶의 궤도를 찾은 듯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도착 첫날, 옥스포드로 직행한 우리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눈앞에 있는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 카페에 들어갔다. 티를 기다리며 책을 보는 사람부터 미소 띤 노부부의 대화 모습, 친절이 세월과 함께 몸에 밴 카페 직원들까지 모두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이러한 화려한 눈요기와 함께 기대 이상의 식사를 마치니 은근 이 친절에 대한 보답에 대해 몇 퍼센트를 요구할까? 살짝 궁금해졌다.

영수증이 나오고 가격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여기에 20% 정도의 팁을 더하더라도 미국에서 4인 중산층이 내는 식비보다 상회하지 않으니 말이다. 뒤이어 친절한 직원이 내 카드와 영수증을 가지고 내 눈앞에서 기계로 결제한 후 “땡큐”라고 말한다. 펜도 안 주네? 다시 영수증을 들여다보는데 팁을 기입하는 곳이 없다. 조금 더 기다려봤지만 그 이후로 그 직원은 다시 오지 않았다. 팁을 주지 못했다는 약간 꺼림직한 마음으로 나와서 다시 이 아름다운 대학도시를 만끽했다.


돌아갈 기차시간이 다가오자 따뜻한 커피가 생각나 주변에 생기있는 카페로 들어가 주문을 했다. 결제 기기에 내가 팁 버튼을 누르려 하자 직원이 얼른 ‘No Tip’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닌가? 내가 왜 그랬냐고 물으니 팁을 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난 그 직원에게 캘리포니아 팁 문화를 이야기해줬더니 경악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우리는 당연히 손님께 친절해야 하는 것이지 댓가를 바라고 할 수 없다는 마음 따뜻하고 상식적인 얘기를 해줬다.

맞다. 분명 미국의 팁 문화는 친절에 대한 감사로 시작된 아름다운 문화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본질은 사라지고 응당 손님이 내야 하는 의무로 자리매김되었다는 것이 참 슬프다. 더 놀라운 것은 팁을 많이 받는 미국의 식당들은 그다지 친절하거나 인간미가 없다는데 있다. 정말 음식이 맛있고 직원들의 배려와 친절이 정말 감사해서 서비스 비용이 아깝지 않다고 느낄 수 있는 업체들이 캘리포니아에 많이 생겨나길 기대해본다.

<이미경(발레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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