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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덕’…‘역사와의 대화’ 신드롬

2022-04-07 (목) 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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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는 해’와 ‘지는 해’의 지지율이 막상막하다. 리얼미터가 21~25일 전국 2,5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국정수행 전망에 대해 ‘잘할 것’이라는 응답은 46%에 그쳤다. 전임 대통령들의 당선 직후 지지율이 80% 전후였던 것과 비교하면 최악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46.7%였다. 당선인의 지지율이 대선 득표율(48.6%) 아래로 떨어지자 권력누수를 뜻하는 ‘레임덕(lame duck)’에 빗대 ‘취임덕’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대선 후에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근본 원인은 국론 분열과 진영 대결에서 찾을 수 있다. 조국 사태 이후 편 가르기가 심화되다보니 대선 대결 구도가 이어지고 있다. 비호감 대선의 후유증과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는 ‘허니문 효과’를 덮고 ‘대선 2라운드’를 만들고 있다. 지지율 하락의 촉매 요인으로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여성·장애인 혐오 발언과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등 일부 ‘윤핵관’의 점령군 행태를 꼽는다.

지지율 추락의 결정적인 방아쇠는 윤 당선인에게 있다. 첫째, 국정의 포석과 수순이 잘못됐다. 국민들은 경제·안보 위기 및 코로나19 속에서 민생 대책 및 국민 통합을 바란다. 그러나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을 최우선 과제처럼 내놓았다. 둘째, 독선적 일 처리와 고집은 국민들을 짜증나게 만들었다. 아무도 청와대 개방을 요구하지 않았는데 윤 당선인의 대변인은 “봄꽃이 지기 전에 국민들께 청와대를 돌려드리겠다”고 시혜를 베풀듯 말했다. ‘광화문 시대’를 공약해놓고 ‘용산 시대’를 국민의 뜻인 양 강행했다. 빠듯한 시한을 정해놓고 집무실·국방부·합참 연쇄 이전을 서두른 것도 무리수였다. ‘제왕적 대통령 종식’을 명분으로 제시했으나 ‘궁궐 이전’을 결정하는 방식은 ‘제왕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소통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소통 없는 이전’이었다.


윤 당선인은 20일 조감도를 펴놓고 브리핑하면서 용산 이전을 공식화했다. 일부 참모들이 곱지 않은 여론을 전했으나 윤 당선인은 듣지 않았다. ‘용산 이전 반대가 많다’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윤 당선인은 “지금 여론조사 결과 몇 대 몇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국민들께서 이미 정치적인, 역사적인 결론은 내린 것이라고 본다”면서 ‘역사’를 내세웠다.

역대 대통령이 간 길을 윤 당선인은 너무 일찍 걸어가고 있다. 필자가 정치부 기자 시절 취재를 맡았던 김영삼(YS)·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전에는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으로 유명했다. “머리는 빌릴 수 있다”고 했던 YS는 1992년 5월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자택에서 막내 기자였던 필자와 만났을 때도 자신에 대한 긍정·부정의 얘기들을 다 들으려 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청와대에 들어간 지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는 쓴소리 듣기를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집권 초 금융실명제 도입 등 깜짝 개혁으로 지지율이 치솟은 YS는 언제부터인가 “훗날 평가할 것”이라며 ‘역사와의 대화’ 신드롬에 빠졌다.

윤 당선인은 ‘나는 전임들과 확실히 다르다’는 엘리트주의 행태도 보여줬다.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는 첫 대통령임’을 부각시켜 차별화하려는 과욕을 읽을 수 있다. ‘최초 증후군’에 빠지면 ‘촛불 정부’를 내세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든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윤 당선인이 오만과 독선으로 비칠 정도로 자신감을 보인 것은 검찰총장 사퇴 후 1년 만에 대통령에 쉽게 당선됐기 때문일 것이다. 윤 당선인의 소신과 ‘직진남’ 스타일은 권력에 맞설 때는 용기와 정의로 빛을 발했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뒤의 확신과 자신감은 아집과 교만으로 흐를 수 있다. 초반 고생은 나중에 쓴 약(藥)이 될 수도 있다. ‘용산 시대’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주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가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위한 구조 개혁 비전을 제시하되 겸허한 자세로 국민들과 소통하면서 설득해야 한다. ‘야당’ 역할을 할 수 있는 ‘쓴소리 참모’도 둬야 한다. 그래야 ‘취임덕’과 ‘레임덕’의 늪에서 벗어나 나라를 정상화할 수 있다.

<김광덕 서울경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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