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90년대 인기 배우였던 브루스 윌리스(67)가 지난 주 영화계를 떠났다. 그의 가족들은 윌리스가 실어증으로 더 이상 연기활동을 할 수 없다며 그의 은퇴를 발표했다. 실어증이란 뇌 안에서 언어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가 손상돼 말을 하거나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병. 대사를 외우고 표현하는 것이 기본인 배우로서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다이 하드’ 등 액션 스타이면서도 훈훈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관객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했던 그의 은퇴는 많은 중장년층 팬들을 섭섭하게 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사안이 관심을 모았다.
첫째는 실어증에 걸린 윌리스가 근년 어떻게 그렇게 많은 영화에 출연했느냐는 것. 지난해 7개 영화가 나왔고 올해 이미 3편이 개봉되었다. 앞으로 2023년까지 8개 작품이 더 개봉될 예정이다. 지난 4년 간 브루스가 출연한 영화는 무려 22편. 실어증이 하루아침에 나타난 게 아닐 텐데 그 동안 그는 어떻게 대사들을 소화했는지 의혹이 제기된다.
둘째는 실어증이라는 병 자체에 대한 관심. 특히 노년층은 단어를 깜빡 깜빡 하고, 이 말 하려는 데 저 말이 튀어나오고, 사람 이름이 입안에서 뱅뱅 돌며 나오지 않는 등의 경험이 적지 않다. “나도 혹시?” 하는 불안과 함께 실어증에 관심이 가는 것이다.
실어증은 왼쪽 뇌의 언어 관장 부위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병이다. 뇌졸중, 심한 머리부상, 뇌종양 등으로 주로 발생하고, 65세 이상 고령층의 경우 치매 등 뇌기능 퇴화로 발생한다. 손상 부위에 따라 완전 실어증, 브로카 실어증, 베르니케 실어증으로 나뉘는 데 완전 실어증은 언어 표현능력과 이해능력이 모두 손상된 상태. 환자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도 이해하지 못한다. 브로카 실어증은 상대방의 말은 알아듣지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한다. 반면 베르니케 실어증은 말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상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엉뚱한 말을 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을 한없이 나열하곤 한다.
윌리스의 경우 어떤 실어증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은퇴발표 직후 나온 LA 타임스 등 주류 미디어의 보도를 보면 그의 인지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의혹은 수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쉬쉬 하며 외부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촬영장에서는 별 일이 다 있었다.
예를 들어 앞으로 개봉될 ‘흰 코끼리(White Elephant)’ 촬영 중 윌리스는 자신이 왜 거기에 있는지를 몰랐다. 스태프들에게 큰 소리로 “내가 왜 여기 있느냐”고 물었다. 자신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 액션 영화촬영 중에는 감독의 큐를 잘못 이해한 그가 공포탄이 장전된 총을 마구 쏘아 주변 사람들을 기겁하게 했다.
근년 시나리오에서 그의 대사분량은 날로 줄어들고, 문장들은 날로 짧아졌으며, 그나마 외우지를 못해 귀에 꽂은 이어피스를 통해 누군가가 대사를 읽어주면 이를 앵무새처럼 따라했다고 한다. 액션은 대부분 대역을 썼다. 왕년의 대배우가 촬영장에서 완전 꼭두각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치매로 의심될 정도로 인지능력에 문제가 있는 그를 영화 제작자들은 왜 그렇게 많이 출연시켰는가. 바로 돈 때문이었다. 저예산 독립영화사들에게 ‘브루스 윌리스’라는 이름이 필요했다. 그가 잠깐 얼굴을 비쳐도 흥행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그의 명성을 이용한 것(윌리스의 며칠 출연료는 보통 200만 달러)인데, 그 결과 그는 최악의 연기상을 받는 수모를 겪었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실어증, 치매 등 인지장애의 불청객이 찾아들 위험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세상 떠나는 날까지 정신이 맑기를 기도할 뿐, 누구도 앞날을 장담할 수가 없다. 정기적으로 검진 받으며 대비하는 것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