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의사가 응급수술을 위한 긴급전화를 받고, 병원에 급히 들어와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실로 향하고 있었다. 의사는 병원 복도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한 소년의 아버지를 발견했다. 의사를 보자마자 그 아버지는 소리를 질렀다.
“오는데 하루 종일 걸리나요? 당신은 내 아들의 생명이 얼마나 위급한지 모르나요? 의사로서 어떤 책임도 없나요?"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달랬다. “죄송합니다. 제가 외부에 있어서 전화 받자마자 달려왔습니다. 수술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조금만 진정해 주세요, 아버님"
“진정하라고? 만약 당신의 아들이 지금 여기 있다면 진정할 수 있겠어? 내 아들이 죽으면 당신이 책임질거야?" 소년의 아버지는 매우 화를 내며 말했다.
“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분명히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입니다."
“자기 아들 아니라고 편안히 말하는구만~"
몇 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의사는 밝은 표정으로 나왔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생명에 지장이 없을 겁니다. 더 궁금한 게 있으시면 간호사에게 물어보세요" 하며, 소년의 아버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의사는 급히 달려 나갔다.
“저 의사는 왜 이렇게 거만한 거요? 내 아들의 상태를 설명할 수 있도록 기다릴 수 없는 건지. 참" 수술실에서 나온 간호사에게 물었다.
간호사는 상기된 얼굴로 눈물을 보이며, “의사 선생님의 아들이 어제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장례식 도중에 수술 전화를 받고 급히 들어오신 겁니다. 아드님의 목숨을 살리시고 장례를 마무리하러 가신 거예요"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늘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합니다. 상대방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분이 많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려고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지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 그렇게 한다면 그럴 수 있겠지 하고 받아들이고 그저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그 거룩하신 이름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위의 의사는 믿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특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돌보려는 마음과 행동을 보면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을 위하여 배려하고, 희생정신으로 친절을 베풀어야 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그 열매를 드러내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고 하였습니다. 여기 우리 말의 자비(kindness)로 번역된 단어의 뜻이 바로 친절입니다.
4월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며, 또한 부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며 조롱과 모욕을 당하시고, 극심한 고통 중에 십자가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을 묵상한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작은 희생으로 관심을 보이며 친절을 베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쉽지 않지만, 그러한 희생이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열매를 맺듯이(요 12:24), 그런 희생이 없다면 부활의 기쁨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위한 예수님의 값진 희생의 죽음이었기에 부활이 큰 영광인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조금 힘들어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며, 친절을 베풀며 살아가기에 부활의 소망이 더욱 확실한, 부활을 더욱 기대하고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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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일 / 목사(가든교회,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