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란 수평선 흰구름 흐르는~’ 내가 취학하기전 해인 ‘65년 가수 박재란님이 번안곡으로 발표했다는 이 노래를 자라면서 콧노래로 흥얼 따라 부를 때 거긴 아마 천국처럼 아득한 곳이라 평생 가볼 수 없을거야 하며 지레 포기를 했었다. 어린 내게 상상 속의 낙원이었을 뿐인 하와이를 찬미하는 하와이 동요 ‘진주조개 잡이(Pearly Shells)’ 는 내게 지상 최고로 아름다운 노래중의 한 곡으로 남아있다. 와이키키 백사장이 우릴 유혹하는 멋진 휴가철이 곧 다가오는데 근 30년전 한국서 은행 다닐 때 두달간 뉴욕 연수를 마치고 귀로에 들렀던 그 곳엘 이젠 다시 한번 가봐도 되지 않을까. 좋은 이들과 멋진 관계 속에 돈도 열심히 벌고 부지런히 여행도 다니며 버켓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 나가며 살고 싶다. 아직 젊음과 몸이 받쳐줄 때.
아 유 버티컬(Are you vertical)? 즉, 건강하게 잘 직립해 걸어 다닐 수 있느냐? 하는 미국인들의 안부 인사이다. 몸이 아파 와병, 다시 말해 몸져 눕는 순간 ‘버티컬’이 아닌 ‘호리존틀’(Horizontal) 라이프가 시작이 되어 이 노래의 도입부에 나오는 수평선이란 아름다운 단어는 순식간에 몸져 누운 상태를 의미하는 무거운 표현이 되고 만다.
어제는 2년전 수필집을 발간했다며 구입하겠냐고 연락이 와 2권을 구입한 적이 있는 뉴욕의 페친에게 나도 책을 냈다며 알려주려 그분의 담벼락엘 들렀었다. 닥터인 남편과 함께 그저 행복하게 사는데 부족함이 없는 분으로만 알았는데, 지금 2년전 완치된 줄 알았던 유방암이 온몸에 전이돼 중환자실에서 검사를 받고 있으며 남은 기간 동안 하나씩 순서를 정해서 삶을 정리를 해야 한다는 거 아닌가. 그만 숙연해 진 나는 ‘기적의 쾌유’ 를 빈다는 짧은 인사만 남기고 와야 했다.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는 주제는? 바로 죽음이다. 지구촌 사람들이 COVID-19로 인한 임박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드디어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한숨 돌릴 채비를 하고 있는 이때 한반도 면적의 3배로 4,800만의 인구를 가진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닌 우크라이나는 지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알통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 난 푸틴의 러시아가 저지른 침공으로 개전 한달 째인 요즘 그곳은 연일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나라는 폐허가 되어 가고 있다. 푸틴이 이렇게 많은 이웃나라의 선량한 사람들을 죽이고 삼백만명에 가까운 난민을 이웃나라로 피신하도록 만든 것은 인류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전쟁범죄다. 우크라이나가 먼저 자극을 했으니 자업자득이라고 말하는 소수 얼빠진 자들을 제외하고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를 악마라 욕하며 저주하고 있다.
독일의 히틀러도,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광들도 과대 망상에 사로잡혀 7~80여년전 그렇게 많은 비난에도 아랑곳 없이 되도 않을 광란의 전쟁 놀음 끝에 스스로 관자놀이에 총을 쏴 장작 불구덩이에 쓰러졌거나 전범 재판에 회부돼 교수형을 당해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지 않았나. 생각해 보라. 겨울에도 난방이 잘돼 반팔로 소파에 뒹굴면서 황해도 (사리원) 출신의 어느덧 83세인 인텔리 풍모의 김동건 아나운서가 근 40년째 진행하는 ‘가요무대’를 보고 있는 아파트 거실에 난데 없이 돌멩이가 떨어져도 화들짝 놀랄 판인데, 하물며 포탄이 떨어져 폭발하는 그 악몽과 아수라의 참상을.. 그것은 도저히 사람이 살 수가 없는 생지옥인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아전인수로 어찌 해석해 합리화 시키던 간에, 자국민들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도움이 되는 최적의 선택을 하며 살아갈 이웃나라의 독자적 자기 운명 결정권, 즉 주권을 무단히 유린하며 쳐 들어가 강제로 자신의 뜻대로 좌지우지 하려는 푸틴과 러시아의 처사는 동네 깡패 짓에 다름 아니다. 푸틴이 제거되던, 이미 손상될 대로 손상된 그가 체면이야 어찌됐던 조속히 철군을 결정하던 이제는 동유럽 약속의 땅 우크라이나에 항구적 평화가 조속히 찾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어제는 또 비교적 가벼운 병이었던 아버지를 집에서 간병할 길이 없어 광주의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가 코로나 사태로 근 2년간 제대로 된 면회도 못하다 그나마 어렵계 마련된 자리에서도 입회를 고집하는 병원관계자들에게 눈치가 보여 고충 토로도 제대로 못하던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낸 또다른 페친의 피울음 맺힌 포스팅도 읽게 되었다. 한국의 형편으로 결코 적지 않은 월 100만의 입원비에도 불구 (가족들이 보기에) 형편없이 부당하고 거친 대우를 받아야 하는 처지를 한탄하며 그렇게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던 아버지를 끝내 모셔오지 못하고 천국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그분의 한 맺힌 글을 읽으며 나는 또 한번 가슴이 저려왔다.
죽을 때 까지 사랑하는 이들과의 아름다운 관계 속에 살다 인간 답고 존엄하게 죽는 것은 이제 인생의 마지막 남은 과제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셀피를 찍는 것을 바닷가 산책과 함께 거의 유일한 취미로 알고 사는 나는 어제 페북에 올렸던 사진을 보면서 의미 심장하게 입꼬리를 올려본다. 몸무게는 요요 현상인지 도로 늘어 220파운드이지만…결코 뱃살이 있다 할 수 없는 아직은 보기 좋은 당당한 체구다. 과연 나는 어떻게 살다 누구의 품안에서 눈물의 뽀뽀를 받으며, 아니면 자다가 평온하게 세상을 떠나게 될까? 화장장 불구덩이에 넣어지면 뜨거워서 도로 깨어 나는 것은 아닐까. 어느날 홀연히 은하철도 999를 타고 태양계 밖의 천국 별로 떠나갈 때 나는 이 땅에 무슨 회한을 남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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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팔로알토 부동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