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봄의 말
2022-03-30 (수)
신정은(SF 한문협 회원)
누구의 손길인가, 이토록 섬세한 붓질로 봄을 그리는 이는. 무성하게 잎만 늘려가던 나무에 색색의 꽃들이 피었다. 분홍빛, 노란빛, 하얀 빛깔의 옷을 입고서 일제히 뛰어나온 꽃의 아이들이 술렁이는 봄의 정원, 저 여리고 고운 빛은 어디에 숨어 있다 나타나는 것일까. 히아신스, 분꽃, 루핀, 개민들레, 갓겨자꽃, 프리지아의 이름을 부르며 걷다 보니 내 마음도 절로 피어나는 것 같다. 봄의 기다림은 어둠 속을 마음에 꽃등 하나 켜고 걸어가는 일, 애틋하게 숨 졸이며 기다리던 시간들 뒤에 봄빛으로 물들어 가는 정원이 화사하다.
꽃잎이 난분분 흩날리는 길, 어찌 이 계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봄의 길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원색의 향연이다. “색채는 빛의 고통”이라고 했던 괴테의 말처럼, 사소한 빛의 입자들이 사물에 부딪히고 튕겨져 나와 반사되는 것이 색이다. 매번 튕겨져 나갈 것을 알면서도 부딪히고 또 부딪히는 아픔을 감수하며 빛은 아름다운 색을 선물한다. 산과 바다, 꽃과 나무들이 빛의 희생으로 아름다움을 드러내듯이, 한 인간의 색채를 만들어 가는 것 또한 그가 겪은 시간의 굴절들일 것이다. 생명을 가진 모든 사물들의 그 유약하고도 경이로운 존재의 방식, 고통, 삶이나 자연이나 아픔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으니.
모퉁이를 돌아서 당도한 길, 보드라운 햇살을 받으며 공동체의 어르신들이 마당 한쪽에서 제초를 하고 계신다. 옹기종기 화단에 둘러앉아 서로의 어깨가 맞닿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며 분주한 모습이, 흡사 살랑이는 봄바람에 재잘거리며 흔들리는 꽃들과도 같다.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버르장머리를 챙길 새도 없이 터져 나오는 무색한 방언, “이쁜 언니드으을~” 다행스럽게도 어르신들은 호탕한 웃음으로 화답해 주신다. 뜰 안쪽에 소담스럽게 피어난 채송화같은 사람들, 이곳은 사람도, 미풍도, 사랑의 부력으로 떠 있는 듯하다.
창공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고 언덕 위 아지랑이를 타고 불어오는 실바람과 대지의 꽃들로 설레이는 봄날의 정오, 세상 만물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질서와 평화의 시간, 모든 순간이 다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라고 했던가. 풍성한 소유보다는 충만한 존재로 살아야겠다. 고통의 능선을 넘고 깨어나는 모든 것들에 기쁨과 축복을 보내는 계절, 봄에게 듣는다. “다시 희망하라, 그리고 사랑하라.” 우리를 지키는 신성함과 우리가 지켜야 할 선함에 대하여...
<신정은(SF 한문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