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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바이올린 여제가 들려준 완벽한 음의 향연

2022-03-2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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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하 기자의 클래식 풍경

▶ 미도리와 힐러리 한, 디즈니홀 공연

LA는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세계 그 어느 도시 못지않게 파라다이스와도 같은 곳이다. 뉴욕에 카네기홀과 링컨센터, 시드니에 오페라하우스가 있다면, LA에는 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최고의 공연장인 월드 디즈니 콘서트홀이 있다. 또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유수의 관현악단 중 하나임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주춤했던 클래식 공연들이 올 시즌에는 봇물 터지듯 이어져 클래식 관객들을 즐겁게 하고 있는데, LA필과 디즈니홀 공연들의 면면은 음악 팬들을 함박웃음 짓게 할 주옥같은 콘서트와 리사이틀들로 가득하다. 2022년 3월의 디즈니홀 공연 캘린더 가운데 미도리와 힐러리 한, 두 바이올린 버추오소의 리사이틀과 콘서트가 특히 그랬다.
두 바이올린 여제가 들려준 완벽한 음의 향연

미도리(왼쪽)와 피아니스트 오즈귀시 아이든. [LA필 제공]

‘명불허전’이었다. 일본이 낳은 신동 출신 천재 바이얼리니스트 미도리(본명 고토 미도리, 五嶋みどり)의 지난 16일 리사이틀은 담백하고 맑은 음악의 아름다움을 흠뻑 느끼게 해준 무대였다. 이날 레파토리는 ▲모차르트 소나타 21번 E단조 ▲슈만 소나타 2번 D단조 ▲바하 소나타 E단조 ▲브람스 소나타 3번 D단조로 이뤄졌다.

미도리는 음 하나하나를 한 땀씩 정성들여 빚는 듯한 ‘음의 장인’이었다. 그의 운지는 바이올린을 조금이라도 세게 만지면 터질 듯 섬세한 터치를 통해 팽팽한 긴장감을 이뤄냈다. 극도로 절제하는 듯하면서도 깊은 서정으로 감동의 물결을 흐르게 했다. 때론 격정적 선율을 타고 가며 조용한 카리스마를 폭발시키기도 했다. 클라이맥스는 브람스였다. 잘 알려진 2악장의 선율이 미도리의 손끝에서 울려나올 때 아름다움의 삼매경에 빠지는 듯 했다.


일본어에서 일반 명사 ‘미도리(みどり)’는 초록색의 뜻이라고 한다. 동반 관람한 음악 칼럼니스트는 “미도리의 연주는 짙은 초록이다. 이름처럼 맑고 푸르다. 깨끗하고 정확한, 그리고 절제된 카리스마가 조용히 청중을 압도한다”고 평했다. 이보다 더 적확할 수 없다.

이날 리사이틀은 특히 미도리와 피아니스트 오즈귀시 아이든의 환상적 호흡으로 인해 더욱 잊지 못할 공연이었다. 아이든의 어컴퍼니먼트는 완벽 그 자체였다.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둘의 호흡은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두 개의 다른 악기가 아니라 마치 하나의 악기처럼 느껴졌다.

이날 미도리는 본 공연 시작 전 깜짝 연주를 들려줬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의 참화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평화를 기리자는 뜻으로, 우크라이나 출신 작곡가 미로슬라프 스코릭의 ‘멜로디(Melody)'라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곡이었다. 칼럼니스트는 여기에서 그가 “음악을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름다운 연주자”임을 봤다고 했다. 미도리가 21세의 젊은 나이 때부터 비영리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환경 때문에 음악을 접하기 힘든 학생들에게 음악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며, 또 평화 운동에도 동참해 2007년 유엔의 평화 메신저로 위촉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두 바이올린 여제가 들려준 완벽한 음의 향연

힐러리 한(왼쪽)과 지휘자 파보 야르비. [LA필 제공]

미도리 리사이틀 이틀 후인 3월18일, 힐러리 한의 디즈니홀 콘서트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놀라운 무대였다. 힐러리 한은 역시 미도리처럼 신동 바이얼리니스트 출신으로, 세계 바이올린 여제 계보를 잇는 미국이 낳은 바이올린 버추오소다. 4살이 채 되기 전 바이올린을 손에 잡은 그는 10세에 커티스 음악원 예비학교에 입학한 직후부터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래미상을 비롯해 디아파종, 에코 클래식, 그라모폰 ‘이달의 음반’ 등 세계적인 음반상을 잇따라 받으며 예술성을 입증했고, 재능과 스타성을 겸비한 최고의 연주자로 우뚝 섰다. 2001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미국 최고의 젊은 클래식 뮤지션’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날 공연의 레파토리는 역시 미국의 작곡가 사무엘 바버의 콘체르토 Op.14였다. 20세기 작곡가이면서도 ‘현대의 브람스’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낭만주의 전통 악풍을 고수한 바버의 이 협주곡은 서정적인 아름다운과 화려함을 동시에 담은 곡이었다. 힐러리 한의 바버는 역시 경쾌하고 화려했다. 현란하고 거침없는 기교와 파워가 넘쳤다. 이날 에스토니아 출신 유명 지휘자 파보 야르비가 지휘봉을 잡은 LA필과의 협연은 완벽 그 자체였다. 함께 한 칼럼니스트는 “온몸이 악기가 되고 음표가 됐다. 다이내믹하게 몰아가는 순간순간이 잊을 수 없는 연주였다. 오케스트라와 균형을 잃지 않으며 완벽함을 이뤘다”고 평했다.

이날 야르비와 LA필은 힐러리 한과의 협연 외에도 역시 에스토니아 출신의 현대음악가 아르보 페르트의 ‘실루엣’과 드보르작의 교향곡 7번을 들려줬다. 두 말이 필요 없는 LA필과 야르비의 호흡, 이 또한 ‘명불허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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