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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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당신이 죽도록 사랑한 키이우의 봄을 기다립니다

2022-03-23 (수) 신정은(SF 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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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달째다. 전쟁은 이제 피비린내 나는 교착상태로 접어들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온 마음을 다한 저항과 용기 있는 행동은 앞으로 수 세대에 걸쳐 전해질 스토리를 늘려가고 있다. “나는 탈 것이 아니라 탄약이 필요하다”며 수도를 떠나지 않는 대통령의 이야기, 포격 협박에도 굴하지 않은 스네이크 섬의 수병 대원, 맨몸으로 주저앉아 탱크를 막으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투항 요구에 단호히 거부한 마리우폴의 저항과 무고한 희생이 그것이다.

국가란 궁극적으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다는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이것이 바로 국가를 건설하는 재료가 되고 이런 이야기들의 힘은 어떤 무기보다도 강하다고 말한다. “러시아의 독재자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어린시절 그는 레닌그라드 전투 때 독일인들의 잔혹함과 러시아인들의 용기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듣고 자랐을 것이다. 그는 지금 비슷한 이야기들을 만들고 있지만 바로 자신을 제2의 히틀러로 만드는 일일 뿐이다.” 결국 잔혹한 외세에도 멈추지 않는 저항의 스토리를 공유하고 믿으며 똘똘 뭉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정신은 더욱 강해질 것이기에 비록 우월한 병력을 가진 푸틴이 전투에서는 승리하더라도 전쟁에서는 패배했다고 보는 이유이다.

민간인을 겨낭하는 러시아의 유혈 공격은 더욱 심화되고 잔인하다. 아이들까지 살해하는 야만성 앞에서 세계의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종전을 외치며 목소리를 함께 한다. 우크라이나는 지금껏 수많은 외침과 학살, 국토의 침탈 속에서도 끝내 독립을 쟁취한 슬라브인의 땅이자 한때 유럽 대국의 기반을 형성했던 키예프 루스 공국, 동슬라브의 종가이다. 루스(러시아)라는 이름까지 모스크바에 빼앗기고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을 새롭게 만들어야 했지만 정체성을 잃지 않고 독자적인 언어와 관습과 문화를 키워왔다.

국제연합(UN)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난민이 350만명에 다다르고 있다고 한다. 춘분이 지나고, 살아 돌아온 모든 존재들에게 한없는 찬탄과 축복을 보내기로 한 계절이 왔지만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조국과 고향을 떠나야 한다. 상상할 수 없는 공포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들과 이 순간에도 전쟁의 참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모든 전쟁 포로들과 난민들을 위하여, 키이우의 숲과 드니프로 강 기슭에 하루 빨리 일상의 평화와 봄이 당도하기를. 이 학살이 부디 멈추어 지길.

<신정은(SF 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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