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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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본다’는 것에 대하여

2022-03-10 (목) 이미경(발레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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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본다는 것은 신체적으로 눈의 망막에 맺히는 상을 통해 사물을 바라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각 사람의 생각과 사상, 경험과 관점을 통해 어떤 대상을 판단한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오늘 아침, 일어나 세수를 하려고 거울 앞에 섰는데 갑자기 왼쪽 눈이 뿌옇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른 아침이라 비몽사몽에 정신이 덜 차려진 탓인가 생각하고 눈을 비비고 또 비벼봤다. 여전히 사물들은 안개 낀 모습이었고 좀처럼 이 비늘이 벗겨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손으로 문질러보고 휴지로 닦아보고, 식염수도 넣어봤지만 허사였다. 문득 이러다 눈이 영영 멀어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몇 분도 지나지 않은 순간에 내가 눈이 멀었을 때를 가정하여 내 삶을 상상하기 시작하니 그 어려움들이 말할 수 없이 큰 것임을 깨닫고는 큰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이럴 순 없다.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무슨 일을 많이 했다고 눈이 먼단 말인가?” 혼자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아닐 거야, 아닐 거야’를 되내이며 제차 눈을 문질러 보고 식염수를 넣어보고를 반복했다.


한참을 이러다 세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경을 낀 줄도 모르고 세수를 하려다 문득 내 안경에 얼룩진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전 날 피곤해서 잠들 때 나도 모르게 안경을 끼고 잔 것이다. 몸을 뒤척이면서 자연스럽게 안경에도 내 살이 눌려 본의 아니게 얼룩이 생기게 된 것을 모르고 아침에 그 소동을 일으킨 것이다.

안경을 열심히 닦고 다시 귀에 걸치고 세상을 보았더니 잠시 전의 소동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맑고 깨끗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참 당황스럽고 우스운 순간이었다. 안경을 다시 벗고 세수를 하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끼고 있는 안경이 이렇게 얼룩투성인데 그 사실을 나만 모른 채 끼고 다니면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나는 과연 온전히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세상에는 많은 사건사고들이 줄지어 일어나고 그 일들은 사람들의 관념과 관점과 시선에 의해 판단되고 회자된다. 그런데 진리가 가리워진 뿌연 안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어떻게 될까? 그럼 그 안경은 무엇을 통해 깨끗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바로 보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때 안경은 더러워질 수 있다. 늘 자신의 안경을 깨끗이 닦고 관리하는 것.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보다 나의 안경을 더 깨끗이 하는 것. 이 작은 일이 더 아름다운 세상, 수용할 만한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다시 안경을 깨끗이 닦아본다.

<이미경(발레 안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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