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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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방역 실종 사건

2022-03-22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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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한국의 코로나 방역이 세계의 찬사를 받던 시절이 있었다. 2020년 초 코로나 유입 초기 한국은 신속한 검사(test)와 확진자 추적(trace), 그리고 치료(treatment) 등 소위 ‘3t’로 불리는 방역 체계를 마련해 세계 어느나라보다 적은 확진자 수를 기록했다. 그 해 5월 퓨 연구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66%가 방역을 잘 하는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세계 1위였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다. 2년 전 하루 확진자 수 백명으로 세계의 부러움을 사던 한국은 이제 이 숫자가 60만 명을 넘어섰다. 또 세계 1위다. 인구가 한국의 6배인 미국은 확진자가 요즘 3만 이하로 떨어졌고 최악일 때도 80만 명대였다.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렇게 확진자가 폭증하고 있는데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계속 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지난 한 달간 사적 모임 최대 인원은 6명에서 8명으로, 영업 시간은 9시에서 11시로 늘렸다. 당국에 따르면 지금 한국에 퍼져 있는 오미크론 변이의 치명율이 독감 수준이고 확진자 폭증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곧 수그러들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확진자가 하루 수백명 나올 때 어느 곳보다 엄격한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을 펴던 한국이 이렇게 180도 입장을 바꾼 것은 중대한 변화다. 이런 정도 사안이라면 대통령이 직접 나와 국민에게 정책 선회 이유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요즘 문재인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찾아 볼 수 없다.

지난 주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문재인 정부 국민 보고’에는 BTS와 찍은 문재인 사진과 함께 코로나 방역에 대한 정부의 대처를 설명하고 있는데 자화자찬으로 일관하고 있을뿐 최근 폭증 사태에 대한 아무런 해명도 없다. 여기에 따르면 “2021년 G 7 정상들이 동시에 문 대통령을 가리켰고 K 방역의 성과 등을 높게 평가했다”며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위기 극복 정부였다”고 돼 있다.

지난 해 말 문재인 정부가 낸 재임 시기 6대 성과 자료집에도 ‘코로나 19 전 세계 대유행 극복을 견인한 K-방역’을 거론하며 ‘마스크 5부제로 수급 안정화’, ‘해외 유입 차단과 3T 전력으로 선제적 방역 조치’, ‘신속하고 안전한 예방 접종’ 같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초기 마스크 부족으로 혼란을 겪던 일이나 구입을 등한시 하다 백신 부족으로 접종이 늦어진 일은 모두 빠져 있다.

최근 한국에서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찬사 일변도이던 외국 언론의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 주 인구 5,000만의 한국 확진자가 하루 62만1,328명을 기록했다며 이런 기록적인 증가세에도 불구 과거 확진자 검사와 추적, 고립에 총력을 기울이던 한국은 집단적 태평함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세계 최고의 전파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와 해외 입국자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며 한국 경제 정책 연구소 관계자를 인용, “더 이상 인내가 남아 있지 않다. 과거 사람들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바이러스의 위험을 과장했지만 협조는 자원이고 이는 낭비됐고 고갈됐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이어 의료 관계자들은 이런 당국의 태도 변화로 중증 환자가 폭증해 병원 업무가 마비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며 규제를 완화할 때는 정점이 지난 후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대로 나가면 한국 확진자수가 1,000만을 넘는 것은 시간 문제다. 하긴 미국도 인구의 20%가 넘는 8,000만명이 걸리고서야 하락세로 돌아섰다. 한국도 인구의 20% 이상이 걸리고나야 진정될 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누가 더 먼저 많이 걸렸느냐의 차이일뿐 결과는 비슷하게 된다.

좋은 일에는 얼굴을 들이밀고 곤란할 때 빠지는 것은 지난 5년간 보여준 문재인의 특징이다. K 방역이 찬사를 받을 때는 100억원의 예산까지 책정하며 홍보에 앞장서더니 백신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자 자신은 13번이나 지시했는데 밑에서 말을 듣지 않았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2020년 코로나 유입이 본격화 됐을 때는 “코로나는 머지 않아 종식될 것”이라며 청와대에서 아카데미상을 받은 봉준호와 짜파구리 먹으며 박장대소하는 사진을 내보냈고 작년에는 유엔 총회 연설을 할 때 BTS를 함께 데려가 주목을 끌었다.

지도자는 좋은 일이 있을 때 박수받는 것 못지 않게 잘 안 됐을 때 책임을 지는 것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코로나 폭증 사태에 대해 해명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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