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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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서녘을 바라보며

2022-03-18 (금) 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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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東)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인생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훨씬 많이 와 버린 서(西)쪽. 나는 해지는 서녘 하늘, 붉은 노을 어디쯤을 지나고 있나 보다. 주변에서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며 전해주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진리가 ‘나도 죽는다’로 주어가 바뀌었다. 그 길엔 순서도 없고 어느 죽음에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변함없이 돌아가는 세상은 사뭇 냉정하다. 시대의 최고 지성이신 故이어령 박사님은 연명치료 대신 천수(天壽)를 받아들이고, 맑은 정신으로 고귀하게 죽어가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간호사로 오랜 기간 죽음을 보아왔지만, 익숙해지는 죽음은 없는 것 같다. 다만 이 부르심에 언제라도 예! 하는 준비된 자이고 싶다.

2017년 안자키 사또루라는 시한부 암환자는 일본 일간지에 자신의 생전(生前) 장례식 광고를 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장례식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후 한국에서도 생전 장례식이 유튜브에 올려진 걸 보았다. 나도 이렇게 하고 싶고, 여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아침식사 도중 뇌경색이 와서 바로 병원으로 실려간 어머니의 소원은 ‘집에 가서 내 물건들과 하직하고, 나를 돌보아준 이웃과 성당 교우분께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었다. 임종이 가까웠어도 어머니를 병원에서 사시던 집으로 퇴원시켜 상속문제를 처리하고, 이승에서의 소중한 시간을 보고싶은 사람을 보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고별 행사를 가졌다. 그후 다시 병원으로 옮겨 마지막 치열한 생사를 넘나들다 내 품에 안겨 숨을 거두셨다. 그대로 병원에서 돌아가시게 하였더라면 후회가 될 뻔했다.

나의 임종을 위한 바람을 적어본다. 난 삶의 길이보다는 의식이 있는 존엄을 택하겠다. 다시 말하면 무리한 치료를 원하지 않으며 인공호흡이나 많은 튜브를 꽂지 않기를 바라는 서류를 미리 작성할 것이다. 나도 고별식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삶이 모두가 선물이었다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진정 원하는 한가지는 나의 촛불이 꺼지기 전, 한번 환하게 타오르듯 의식이 맑게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는 그 순간- 회광반조(Terminal lucidity, 죽기 직전에 잠시 정신이 돌아오는 것)- 내 곁에 아니 내 눈동자 안에 단 한명이라도 아이들이 들어와 주었으면 좋겠다. 죽음을 재촉하는 요란한 기계음 대신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떠나고 싶다. 어느 봄날, 시대의 거인을 잃은 아쉬움 속에 서녁을 바라보며 일몰을 향해 가고 있는 나의 남은 거리를 측량해 본다.

<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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