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겨울 새벽의 맨하탄 거리에는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오전 4시15분경 차이나 타운 외곽의 한 아파트 앞에 택시가 멈춰 섰다. 택시에서 내리는 사람은 30대 중반의 동양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릴 때 누군가가 숨어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선 그녀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6층까지 걸어올라가야 했다.
그녀의 뒤를 회색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은 검은 그림자가 뒤쫓고 있었다. 그자는 5층과 6층 사이 층계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녀가 6층 아파트 문을 열자마자 단숨에 층계를 뛰어 올라가 열린 문틈으로 그녀를 강제로 밀치면서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4시 20분경 비명 소리를 듣고 복도 맞은편에 사는 이웃이 911에 신고를 했고 5분 후에 경찰관들이 도착했다. 경찰이 아파트 문을 열지 못하고 문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 안에서는 계속해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비명 소리는 잠시 후 멈췄다. 증원 요청을 받고 도착한 경찰 특공대원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때는 이미 때가 늦어있었다. 범인은 겁에 질려 필사적으로 반항하는 생면부지의 젊은 아시안 여성을 40여차례 흉기로 찔러 무참하게 살해한 것이다.
그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자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였다. 25세의 흑인 홈리스 ‘아싸마드 나쉬’는 이미 여러 차례의 전과 경력이 있었고 범행 당시에도 보호관찰 대상으로 가석방된 상태였다.
아시안, 특히 아시안 여성과 노인에 대한 혐오범죄는 뉴욕에서 거의 매달 발생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효과적인 대책 마련 없이 같은 비극이 매번 되풀이 되고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왜 우리가 예방하지 못했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에릭 아담스’ 뉴욕 시장의 말이 공허하게 들린다.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크리스티나 유나 리’, 그녀는 2008년 럿거스 대학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의 온라인 뮤직 플랫폼 회사인 ‘스프라이스’ 사에서 선임 프로듀서로 명성을 날리던 아름답고 젊은 한인이었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녀의 해맑은 미소와 주변 사람들을 환하게 만드는 마력과도 같은 밝고 따듯한 마음씨, 그리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프로 정신을 이야기한다. ‘스프라이스’사에서 그녀의 상사로 함께 일 했던 ‘케네스 허만’씨는 ‘아무도 그녀의 재능과 열정을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크리스티나의 소꿉친구인 한인 프로골퍼 폴박(Paul Park)은 ‘크리스티나 누나는 이 세상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긍정적인 에너지와 사랑, 그리고 희망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녀는 강인하고 지적이며 여행을 좋아하고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섰지요. 그녀는 늘 내게 말했어요. 세상은 보다 많은 사랑과 예술과 춤을 필요로 한다고요.’
‘크리스티나 유나 리’의 아버지이자 시인인 이성곤씨는 딸의 비극을 예감이라도 했는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꽃/ 이성곤. ‘ 꽃들은 볼 때마다/ 항상 웃으며 반긴다/ 오랜 세월 한결같다/ 꽃들에겐 슬픔이 없을까/ 문득 생각 해 본다/ 예전에 그녀는 항상 웃었고/ 그녀에겐 슬픔이 없는 줄 알았다/ 그녀가 떠난다고 했을 때/ 비로소 그녀의 슬픔을 알았듯/ 꽃이 질 때야/ 꽃의 슬픔을 알게 될까 두렵다/’
지금은 붉게 물드는 저녁 노을이 되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된 아름다운 사람 ‘크리스나 유나 리’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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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호/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