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이민을 떠나와서 한창 정신이 없을 2005년에 한국에서는 가수 나훈아가 이 노래를 불러서 히트했다고 한다. 이 트롯가요가 내 귀에 들려 온 것은 그후로도 한참이나 흘러흘러 15년이 지난 후인 2018년 새로 입주한 집 지하실에 노래방 기계를 들여 놓은 다음이었다.
이민 초기에 직업상 미국인들의 지하실을 수도 없이 들락거려 봐서 그 지하실을 어떤 용도로 활용하는 지 잘 알고 있었지만 같은 미국에 사는 한국동포들은 거의 천편일률적이다. 맞다. 노래방이 있다. 지하실이 넓으면 와인바나 운동시설등도 있지만 노래방은 꼭 있어야 하는 것처럼 나도 그랬다. 그날 업소용 노래방 기계를 들여 놓고 설치한 다음에 중년인기가요 목록에 저 노래 ‘고장난 벽시계’가 있어서 연습해 봤더니 옆에서 듣고 있던 와이프가 ‘이거 딱 당신 노래네~’ 한다.
학교음악과 대중가요를 구태여 구분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겠지만 대학에 입학하자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비록 그 어느 누구도 똑부러지게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캠퍼스 잔디밭에 아무렇게나 둘러 앉아서 막걸리 몇병에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부르고 있으면 저만치서부터 쭈뼛거리듯 외면하는 여학생들을 보면서 ‘ 자~ 떠나자 고래 잡으로~~’를 더 핏대 올려가면서 불렀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스스로 못할 짓 한 것 마냥 ‘수그리’했었다.
대신에 ‘선구자’나 ‘비목’ 등을 비장하고 근엄하게 불러야 루저를 피할 수 있다는 ‘선민의식’ 같은 게 있었던듯 하다. 그리고 일반 대중가요 ‘뽕짝’풍 노래는 스스로 날라리 딴따라 취급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요즈음은 오히려 많이 달라졌다. 그게 꼭 나이탓만은 아닌것 같다.
평소에는 무심한 물건이 벽시계다. 나는 아직도 시간을 체크할 일이 있으면 벽시계가 전화보다 더 익숙하다. 다른 사람도 그러는 지는 모르겠다. 눈뜨면 방안의 벽시계를 먼저 본다. 집안의 코너코너를 돌때도 마찬가지다. 몇개는 안되지만 그 중에 어느 시계 하나가 멈춰 있으면 아마도 그날은 골프가 잘 안될 것처럼 예민해진다.
우리 동네 춘동댁은 부자였다. 어느날 며느리가 들일 나가면서 시어머니에게 ‘어머님 시계 밥 좀 주세요.’ 하고서 들일을 보고 돌아와서 보니 시계 벽면 앞에 제삿상 차리듯이 밥상이 놓여 있더라는 말을 우물가에서 했던지 어린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그 당시 시계들은 사람이 직접 이틀에 한번씩 태엽을 감아줘야 시계가 그 태엽을 서서히 풀어가면서 시간을 맞추는 타입이었다. 시계안을 열어 보면 수많은 톱니바퀴들이 맞물려돌아가는 식이다. 손목시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미국생활은 1년에 두번씩 봄 가을에 시간을 바꿔줘야 하는 일이 생긴다. 집안 곳곳의 시계를 모두 1시간씩 바꾸는 일도 이제는 귀찮아질 나이인가 보다.
시계는 높은 곳에 있어야 한다고 누가 강제하지도 않았는데도 오늘따라 유난히 더 높다. 평소 같으면 그려려니 하고 의자 놓고 올라가서 고쳐놓겠지만 한쪽팔이 불편해서 그런지, 왜 저렇게 높은 곳에 매달아 놨지? 그 몇 피트만 벽시계 못을 내려 박았으면 될 걸 그 차이를 모르고 1년이면 12번 4년이면 48번을 의자를 이리저리 바닥 긁혀 끌고 다니면서 오르내리락 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사할 때까지 아마 수백 번도 더 그러고 있을 터이다.
생각의 간극들이 별개 아니라고, 그게 그것이고, 차이가 있다면 얼마나 된다고 저토록 치열할까 했는데…, 그렇지가 않구나 새삼 절절히 느낀다. 누구에게는 일상적인 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깜깜이다. 깜깜할 정도가 아니라 지구와 화성처럼 멀다. 그래서 서로를 ‘화성인’이라고 손가락질까지 한다.
통일이면 다 같은 통일인데도 파고들어갈수록 틀리다. 남한이 생각하는 통일, 북한이 부르는 통일, 남한내에서도 또 다르다. 그래서 남의 나라, 다른 민족의 통일사례를 들여다 대입도 시켜본다. 헌법전문에까지 적시해서 대통령에 취임하면 손을 들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선서까지 하도록 되어있는데도 ‘고장난 벽시계처럼’ 아득하게만 보인다.
통일 독일 그 후 30년이라는 논문을 본적이 있다. 그 세세한 숫자보다는 재정, 세금, 인구, 실업, 출생율, 열등감, 오만, 동독 출신 고위직 1.7%, 장성 2/200, 동독출신대학 총장 0명, 오로지 메르켈 수상은 구동독 출신으로 세계적인 지도자로 추앙받지만 실상은 이렇다.
너무 큰 것만 바라보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기존의 개성공단, 금강산이라도 꾸준히 복원한다 해도 거의 15년을 허송해 버렸다.
그래서 통일(統一)만 고집할 게 아니라 차라리 통일(通一)이라도 하자는 의견이 설득력이 높다. 그게 더 현실적이요 실현가능할듯하여 무슨 틈이라도 만들어 보고자 이렇게 애쓰고 싶다.
남북한의 고장난 벽시계를 멈춘 것도 그렇고 돌아가게 하는 것도 ‘정치인’들이다. 정치만 할게 아니라 ‘민족적 리더’가 좀 나왔으면 한다. 통일의 시계를 멈추게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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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 민주평통 위싱턴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