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들도 후보인디, 각시들 뉴스를 보면 기가 차-”.
시장통의 할머니가 한국 대통령 선거 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한국 선거, 스캔들과 모욕으로 얼룩지다’. 워싱턴 포스트 지는 이렇게 전하기도 했다.
‘역대급 비호감’ 소리가 나왔던 선거도 마침내 끝나고 결과는 가려졌다. 지지했던 후보가 진 쪽은 기분이 착 가라앉아 있다. 선거 후에는 의례 통합, 화합, 이런 말들이 강조되는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선거전은 그만큼 치열했고, 결과는 박빙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는 이번 한국 대선만 요란한 것이 아니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가 기억나는지 모르겠다. 그 때도 “이런 선거는 사상 처음”이라는 우려와 비판이 쏟아졌다. 나라가 둘로 쪼개질 듯 친 트럼프, 반 트럼프 간의 대립과 갈등은 첨예했다. 의사당 난입 사건까지 벌어지면서 체면을 구겼다. 한국 선거는 결과에 토를 달지는 않으니 그나마 양반이라고 할까.
선거는 외부인이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있던 그 사회의 비리, 모순, 부조리 등을 스스로, 때로 과장된 모습으로 드러내 보이는 계기가 된다. 당사자들은 원치 않았을 의미 있는 선거 부산물로 보인다.
지난 선거 때 확인된 미국사회의 당면 과제는 심화된 양극화였다.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난 가장 심각한 한국병은 무엇이었을까. 내로남불? 청년 실업? 부동산 정책? 젠더 갈등? 빈부 차이? 지역 감정? 아마도 만연한 탈법과 부정직이 아니었을 지 모르겠다. 누가, 얼마나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암담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 병폐는 한국사회에 보편화돼 있었다.
유력 후보의 부인들은 선거 때 ‘머리카락 보일라 꽁꽁 숨어라’ 전략을 폈다. 저마다 이런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수타는 퍼스트 레이디? 희화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지만 나설 수록 감표 요인이었을 것이다. 집안을 먼저 다스린 후 천하 경영에 나서라는 옛말은 우습게 됐다.
한국사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정직한 자기 진단이 필요하고, 기성세대가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면 더 과감한 세대 교체가 필요할 것이다. 선거 때 제기된 이슈가 불법과 연관돼 있는 것이라면 선거 결과와 별개로 가려져야 한다. 정치 보복과 연결시킬 일이 아닌 것이다.
제기된 의혹 중에는 치졸한 것도 많다. 법인 카드로 초밥 10인분, 고기 몇 근… 이렇게, 저렇게 액수를 맞추고… 모르고 지나갔으면 더 좋았을 기득권 지도층의 민 낯을 들여다본 것 같아 괜히 민망하다.
주가조작 의혹, 이런 건 더 심각한 이슈 아닌가.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집안 어르신의 모습은 보기 딱하다. 대학은 여사님의 논문 표절문제를 어떻게 발표할 것인가. 학위 만능의 허영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교과서적인 이야기겠으나 누구를 지지했든 당선인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명품 대통령이 된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한국, 한국민뿐 아니라 지구 곳곳에 퍼져 있는 글로벌 코리언을 위해서도 그렇다. 거대 야당이라고 발목만 잡는 구태가 재연된다면 그 판단은 다음 선거 때 내려질 것이다.
당선인은 정치판의 새 술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때묻은 기성 정치인은 아니다. 그런데 담기는 부대가 낡았다. 새 술인데 새 부대가 아닌 것이다. 차기 정권의 담당세력으로 떠 오르고 있는 면면들을 보면 실망을 넘어 절망감이 앞서는 인물들도 있다. 지금은 ‘누구 아빠’로 더 유명해진 듯한 측근 중 한 사람은 유난히 눈을 부라리고 언성만 높이던 의정활동이 눈에 띄던 사람이기도 했다.
새 술이 담겼다고 헌 부대가 새로워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낡은 옷에 새 천을 갖다 붙이면 옷이 찢어지고, 새 포도주를 담으면 헌 부대가 터지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일은 없을지 미리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