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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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카페 드 플로르

2022-03-16 (수) 신정은(SF 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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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문학도였던 내가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학부를 졸업하기 전 장래를 타진하며 소르본느에서 지냈던 시간들은 탐구해야 할 경이로운 세계였으며, 도시의 낭만적인 분위기와 별도의 다양한 생동감으로 사색과 몽상의 기쁨을 일러 주었다. 진로를 바꾸면서 다다르지 못한 꿈이 되었으나 빛이 바랠수록 숙성되는 기억은, 헤밍웨이에게 그랬듯이 ‘움직이는 축제’가 되어 늘 내 곁에 머물러 있다.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나 담을 수 없는 향기, 도시의 화양연화는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될 만큼 가난한 동네에서 시작되었다. 한때 라틴구역에 기숙하던 학생들이 시니컬하게 불렀던 파르나소스 산, 작가와 예술가들은 몽마르트가 퇴폐적이고 상업적으로 변하자, 센 강을 건너 몽파르나스를 예술 구역으로 삼았다. 특히 생 제르맹 데 프레 한복판에 있는 ‘카페 드 플로르’는, 모두가 열망하는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를 풍미했던 예술과 정신의 현장이자, 20세기 프랑스 지성과 문화의 중심지로 카페 문화를 이끌어 온 대표적인 장소이다.

실존주의 작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에서부터 헤밍웨이, 카뮈, 생텍쥐뻬리, 자코메티, 앙드레 말로, 롤랑 바르트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사상과 예술을 확장시키며 교류하던 카페 ‘플로르’는, 철학의 공간이자 집필과 토론의 장소였다. 마리 로랑생과 헤어진 기욤 아폴리네르가 피카소와 함께 문예지, ‘파리의 저녁’을 창간했던 곳이고, 앙드레 지드가 중심이 된 ‘신 프랑스 평론’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세계 대전을 두 번이나 겪어야 했던 이들의 시간 속에 사르트르가 회고하듯 ‘자유로 가는 길’이었던 ‘플로르’는 예술가들의 안식처였고, 꽃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 플로르의 이름 그대로 문학과 예술, 사상의 꽃을 피우며 분파를 초월한 모두의 문예 살롱이었다.


이들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공간에 그들이 모두 있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릴 일이다. 오후가 되면 ‘플로르’의 이층에선 아직도 원고를 쓰거나 인터뷰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3월의 파리는 쌀쌀하고 갑작스레 호우가 내리기도 한다. 지불레(3월에 오는 소나기)가 쏟아질 때면 신비한 분위기가 도시를 감싸고, ‘플로르’는 술렁이기 시작한다. 공간을 채우는 온도와 냄새와 소리를 따라 ‘창조에 술렁이는 숲’, 순간 ‘플로르’는 나를 지배하는 정서가 되고, 그 많은 열망들 위에 시간이 멈추어 있었다.

<신정은(SF 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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