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친구
2022-03-11 (금)
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밝은 청정 하늘에 흰 구름이 너울대고, 블루 사파이어 오션이 감싼 샌프란시스코. 이 아름다운 이국땅은 남편을 잃은 사람이나 어머니와 동생을 보낸 이들의 마음을 받아 주기엔 너무 화려하였나 보다. 불현듯, 준비없이 사랑하는 남편을 보내고 가슴을 부여잡고 사는 친구와 가신 이들을 보내는 한국여행을 갔었다. 일년 전 봄이다. 봄. 봄은 새롭게 시작하기 좋은 때라고 서로를 다독이며, 이런 빈약한 믿음이라도 갖고, 주어지는 대로 또 세상 돌아가는 대로 잘 살아보자고 하였었다.
남도 서해안 기차를 타고 마지막에 서는 종착역, 항구도시 목포로 갔다. 자그마한 시가지는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난 듯 조용하였고, 갯내음만큼이나 쿨쿨한 말씨에 맛나고 푸짐한 음식. 흔히들 목포는 살아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정(情)의 도시라고 하였던 말 그대로였다. 물은 철얼썩 철얼썩 쉬지 않고 바위를 다독거리고,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가신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였고 우리 자신도 위로받으며 걸었다. 유달산(儒達山), 영혼이 쉬어 가는 곳이라는 의미의 영달산은 모든 것은 물거품이 스러지듯 사라지는 것이라고, 기억과 가슴에 스며든 감정만 나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긴 케이블카 위에서 다도해의 풍광을 누리는 우리에게, 노을은 살기에 괜찮은 세상이지 않으냐고 하지만 슬퍼할 땐 슬퍼하라고 속삭였다.
<어떠한 진리도, 어떠한 성실함도, 어떠한 강함도, 어떠한 부드러움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 슬픔을 실컷 슬퍼한 끝에,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우는 길 밖에 없으며, 그렇게 배운 그 무엇도 다음에 닥쳐오는 예기치 않는 슬픔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말대로 실컷 슬퍼했었다. 부인–분노–협상–우울–수용이라는 애도의 5단계를 좀 더 쉽게 넘기기 위해서.
어제, 또 다른 봄, 그 친구랑 넷이서 더블린의 겸손히 누워 있는 초록 산등성이를 걸었다. 덩실덩실 춤추는 뭉게구름과 하얀 배꽃이 띠를 두르고 분홍 지붕들이 옹기종기 어우러진 자연 아래, 우리는 실제로 수용단계를 거쳐 꽃길에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1년이란 시간의 치유를 알 수 있었다. 친구는 표정도 밝았고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을 찾은 것 같았다. 어느 만큼은 체념을 배웠고, 현실이라는 이 땅에서는 두 발로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상실의 유산인 ‘남편에 대한 기억’으로 꽉 채워진 자기만의 박물관을 잘 관리하고 있었다.
<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