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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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게 정치다

2022-03-10 (목) 김종하 편집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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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두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였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천연두는 기원전 1만년 즈음부터 있었다고 한다. 공기 전염이 가능하고 치사율이 높아 18세기까지 유럽에서만 매년 수십만 명이 사망했고, 그 이후로도 매해 수백만이 이로 인해 죽어갔다는 최악의 전염병 중 하나였다. 우리 조상들이 ‘마마’라고 칭했던 천연두는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한 천연두의 퇴치에 희망의 싹이 돋은 것은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오늘날의 백신 효과를 발견한 1796년이었다.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질환으로 죽어가긴 했지만, 인류 역사에서 전염병에 대한 최초의 백신으로 일컬어지는 천연두 백신 덕에 감염과 사망이 점차 줄었고, 마침내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1979년 천연두 박멸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천연두의 예에서 보듯 백신은 인류가 이룬 최고의 과학적 업적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하다. 홍역과 소아마비 등 인류를 위협해 온 전염 질환들로부터 현대사회가 자유로울 수 있는 것도 백신의 덕일 것이다. 천연두와 종류는 다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 19)의 대유행 속에 이에 대한 백신이 그처럼 짧은 시간 내에 개발돼 가공할 신종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를 인류에게 제공하게 된 것은 과학의 승리라 아니할 수 없다.


이번 팬데믹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고, 앞으로 코로나 19가 독감처럼 인류가 계속 안고 살아가야 할 ‘엔데믹’이 되리라는 전망이지만, mRNA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을 불과 1년여 만에 개발에 성공한 과학자들이 언젠가는 노벨의학상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듯하다.

그러나 과학의 반대편에는 음모론이 있다. 여기에는 과학의 토대를 흔들어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백신을 거부하는 음모론의 뒤에는 또 이를 먹고 자라는 정치가 똬리를 틀고 있다. 거짓 선동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세력을 넓히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의학상 이유로 백신을 맞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전에도 백신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늘 있어왔지만, 홍역이나 소아마비 같은 백신들이 초중고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요구돼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공보건상의 장점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백신 뿐 아니다. 상식적으로 봐도 감염을 줄이는데 효과가 있는 마스크를 ‘자유’라는 이름으로 거부하고, 이를 타인들에게까지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마스크는 사람을 살리는 도구다. 자동차의 안전벨트도 생명을 지키는 효과 때문에 탑승자를 자리에 묶어두는 속박을 법으로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명백하게 자유를 침해하는’ 안전벨트는 거부하지 않으면서, 마스크를 음모론에 몰아넣는 것은 위선이다.

만약의 사고시 안전벨트는 착용자 본인만을 지키지만, 마스크와 백신은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구할 수 있다. 호흡기 전염병의 확산 속 감염 위험은 만약의 교통사고가 발생한 확률보다 훨씬 높다. 과학을 무시하는 음모론과 분열적 정치가 현대 인류사회에 유례없는 팬데믹 사태 속에 불필요한 희생을 많이 낳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치의 궁극적 쓰임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한 정치 지도자가 어떤 비전을 보여주고 어떻게 정책을 실행하느냐가 많은 사람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다. 반대로 정치 지도자가 맹신과 아집에 사로잡혀 오판에 근거한 막무가내 행동으로 옮길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작금의 우크라이나 사태가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의 참화가 현 시대의 지구촌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정치 권력자들의 야욕과 오판이 양국 군인들은 물론 수천수만의 민간인 사상과 수백만 명 피난민을 낳고 있다.


러시아군의 민간 시설에 대한 무차별 공습과 포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우크라이나 남부도시 마리우폴은 지금 지옥이 따로 없다고 한다. 어린이 병원까지 폭격을 당했다는 게 현지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이미 전기와 수도가 끊긴지 오래고, 식량과 의약품도 심각하게 부족한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도시에서만 전쟁 사망자가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1,100명이 넘는다는 암울한 소식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은 위대했고, 전 세계는 러시아의 침공 앞에 단결했다. 역사학자로 유명한 이스라엘의 석학 유발 하라리는 “푸틴의 도박은 완전히 실패하고, 역사에 남을 패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전쟁범죄다. 푸틴은 언젠가 세계 법정에서 전범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구촌을 뒤흔들고 있는 지금, 정치 지도자의 중요성에 대한 각성이 다음을 경구로 기억하게 한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인권은 없다. 그걸 살리는 게 정치다.

<김종하 편집기획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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