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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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 동 시대에 함께 계셨던 시간에 감사하며

2022-03-08 (화) 신예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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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령 선생님 타계에 부쳐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어령 선생님, 잊혀지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남은 사람의 기억 속에 삶과 죽음은 영원히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 슬픔의 파고는 너무도 높이 솟아 오릅니다. 예측 불가의 많은 세상 일들이 해무처럼 모든 것을 덮어 버릴지라도 솟아나는 그리움만은 너무도 선명하기만 합니다.

누구나 떠나고, 단지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를 뿐이며, 삶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달래 보지만, 여전한 이 슬픔과 그리움을 어찌해야 할까요.


절대자의 종착역을 알리는 하차명령에 그것이 언제이든, 우리는 이만 삶의 열차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움은 남은 자들의 몫으로 남겨집니다.

이 즈음, 우리의 마음은 아랑곳 없이 흐드러진 매화 꽃이 봄을 알리고 있습니다. 남은 자들은 봄을, 여름을, 가을을, 그리고 겨울을 자신의 떠날 날을 모르는 채로 살아 갈 것입니다. 경이롭고 신비스러운 삶이지만 무상함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지금은 다만 동 시대에 함께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선생님과의 행운의 인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에뜨랑제여 그대의 고향은’ 이라는 제 처녀작의 인기로 마냥 들떠있었던 1968 년, 저는 선생님을 처음 뵈었지요. 삼중당의 특별 기획으로 선생님의 저서와 다른 두 분의 저서들과 제 소설 ‘외로운 사육제’가 포함되는 행운 속에 선생님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출판사 길 건너 찻집에서 선생님과 나누었던 두어 시간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그 대화가 어찌나 진지했던지 제가 45분, 선생님께서 1시간을 말씀하셔서 결국 제가 15분 졌다는 편집장의 장난기 어린 재밌는 뒷 얘기가 장안에 퍼지기도 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때 선생님의 빛나는 언어들로 인해 제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요. 거인의 지성을 만났고, 선생님께서 아끼셨던 소설가 김승옥, 최인호등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들, 그리고 그 시간들은 황금 빛 추억으로 제 삶을 윤택하게 해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불가한 분이십니다. 이제 선생님의 삶의 막이 내려지고 그 막의 자락을 붙잡고 우리들은 다만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선생님께서 집필을 통하여 우리에게 남기려 하셨던 것은 ‘사랑’이었다는 것을, 또한 선생님의 빛나는 지성, 그 깊은 곳의 원천은 바로 그 ‘사랑’이었다는 것을 말이죠. 그리하여 선생님의 삶은 보석처럼 빛나고 아름다웠습니다.

떠나셨으나 결코 떠나지 않으신 선생님, 가슴에, 기억 속에 소중하게 함께 계신 선생님, 멋진 삶을 영위하신 선생님, 우리들의 추억 속에 언제나 별과 같이 빛을 발하고 계실 것입니다.

이어령 선생님께서 존재하셨던 시간들에 감사하며 이 글을 바칩니다. 한없는 그리움으로… .

<신예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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