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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칼럼] 나의 글쓰기

2022-03-03 (목) 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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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일보 종교란 컬럼에 글을 올린지 2년이 훌쩍 넘었다. 신문사측에서 그만 쓰라는 언급이 아직까지 없기에 계속 글을 올리고 있다. 독자들은 이미 파악하셨겠지만 나는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훈련받은 전문 글쟁이가 아니다. 글을 자유롭게 다루며 기승전결의 문장을 구성하여 이야기및 사유 거리를 만들어내는 수필가, 소설가, 시인, 논설가, 평론가, 신학자가 아니다. 내가 기고한 글들중에는 어떤 특정분야를 해석, 재단하고 분석, 조망하는 전문성을 띈 글이 거의 없다. 한 달에 한번씩 이곳에 올려진 나의 글들은 오늘까지 살아온 세월과 삶의 사연들을 나름 믿음 안에서 엮고 조합하여 일상언어로 표현한 아주 평범한 신앙인의 글일 뿐이다.

최근 글을 게재하면서 한 물음이 생겼다. 글과 글사이의 행간에 울림이 내재된 실력있는 문인들, 문장마다 설득력있고 이해력 돋우는 글쟁이들의 글들이 넘쳐나는데 나같은 보통사람이 2년 넘게 여기에 글을 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글을 쓰면 누군가가 조금은 알아주겠지라는 순박한 공명심 이기심때문일까, 내가 속해 있는 기독교의 주장과 신념을 좀 더 선전하려는 종교적 목적 때문일까, 글을 읽어주는 이들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려는 미학적 열망때문일까, 아니면 일상 삶과 사연을 공유코자 하는 감성적 욕구때문일까? 글을 게재하는 동기를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어느날 기자님으로부터 부탁받고 그래서 용기 반 부끄러움 반으로 쓰다보니 오늘에 이른듯 하다.

글에는 사람을 보여주는 힘이 있다. ‘언어(글)는 존재하는 집이다’ 라고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했는데 이는 글을 통해 글 쓴 사람이 온전히 드러난다는 뜻이다. ‘Pen(글)은 칼보다 힘이 있다’고 에드워드 리턴이 말했는데 이는 글에 의한 사고, 언론, 저술, 정보의 전달은 직접적인 폭력보다 사람들에게 더욱 영향력을 끼친다는 뜻이다. 사회주의 문학가 오웰은 좋은 글은 외부 세상과 사람들을 통찰하며 보게 하는 유리창과 같다 했다. 글은 인생목표를 성취함에도 큰 도움이 된다. 언젠가 예일대학의 한 연구팀이 그해 졸업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분명한 삶의 목표를 글로 써서 지니고 있는 학생이 어느정도인지 조사했다. 그들중 단 3%의 학생만이 글로 쓴 목표를 갖고 있었다. 20년이 지난후 이들을 추적 조사했는데 글로 쓴 목표를 지녔던 학생들이 소유한 부는 나머지 97% 사람 모두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 하버드대학의 연구결과도 이와 유사했다. 80%의 학생들은 특별한 목표가 없었고 15%는 생각만으로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 5%는 글로 적은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 5%에 속하는 학생 각자가 이룬 성과를 살폈는데 그들 스스로 정한 목표를 능가했으며 그들의 성과는 나머지 95%를 합친 것보다 더욱 크고 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글은 감동을 준다. 설득하고 깨우치고 배움과 교훈을 더해 준다. 글은 꾸짖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격려와 위로를 전해준다. 아름다운 글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사람들의 가슴을 모으고 영혼을 서로 만나게 한다. 글로 사람, 사회,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다. 루터의 개혁은 종교계를 위시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기술, 사상등 유럽사회 전반을 일변시켰는데 이는 글과 말로 시작되었다. 성경은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The Written Word), 즉 말씀이면서 글이다. 헌데 이 성경 글에는 생명력 운동력 침투력이 있어 사람을 살리고 변화시킨다.

오늘의 사회현상들 중에는 쏠림과 편협, 분노와 복수, 가짜와 왜곡등이 있다. 특히 종교계와 정치계에서 이런 현상들이 더욱 빈번히 발생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한쪽으로 치우치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비이성적이고 자랑하고 감정을 치장하고 선동하는 글들이 참 많다. 울림있는 좋은 글과 말은 맑은 정신과 투명한 생각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거룩하고 아름다운 영혼에서 나온다. 즉, 글의 가치와 우아함은 글쓴이의 믿음과 성품과 마음가짐에서 우러나온다. 아름다운 영혼은 주님과 그분 말씀과의 친밀함에서 생성된다. 하면 나의 글쓰기에는 주님닮은 영혼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담겨 있는걸까?

<임택규 목사 (산호세 동산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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