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백마디 말보다 한 점의 그림이 마음에 더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시선을 끄는 그림 앞에서 어떤 내밀한 감정의 경지에 드는 것은 색채의 작용만이 아닐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림을 가리켜 ‘정신적인 일(cosa mentale)’이라고 한 마음과 정신이 들어 있는 그림, 그것은 분명 숨을 쉬고 있고, 빛을 발하고 있고, 침묵의 목소리로 말을 건네고 있다.
연인. 난만한 꽃들이 물결처럼 흐르는 사랑의 공간과, 벼랑 끝을 딛고 있는 불안한 심연이 함께 드러난 화면에서 이들을 이어주는 것은 금박의 배경이다. 질감을 달리한 금빛 세상은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서도 빛을 잃지 않는 아우라(Aura)로, 보는 이를 순식간에 작품의 정적 속으로 끌어들인다.
부친이 귀금속을 다루는 세공업자였던 그에게 섬광같은 영감을 준 곳은 이탈리아의 중세도시 라벤나였다. 산 비탈레 성당의 황금빛 프레스코와 비잔틴 모자이크에 매료된 화가는 금박의 모티브로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했고, 우리는 그것을 클림트의 황금기라고 부른다.
‘키스’는 화가로서 클림트의 절정이자 황금기의 대표작이다. 작품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미술계는 술렁였고,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림이 걸리자마자 국가가 즉시 사들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랑을 자신만의 알레고리로 풀어낸 클림트의 황금 장식 기법의 작풍은 비엔나 아르누보(Art nouveau, 새로운 예술)의 상징이 되었다. 어찌 보면 ‘모나리자’, ‘절규’(뭉크)와 함께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3대 이미지 중의 하나로도 꼽을 수 있는 ‘키스’의 여인에 대해서는, 클림트의 정신적 동반자이자 영원한 뮤즈였던 에밀리 플뢰게라는 이야기가 지배적이다.
캔버스 위에 펼쳐진 황금빛 숭고함, 그것은 세상을 매료시킨 포옹이었다. 마치 성스러운 사랑의 정신적 결합과도 같은 고귀한 느낌은 웅장한 크기 만큼이나 압도적이다. 금빛의 입맞춤은 이전과 이후에도 없었던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창성으로, 현실을 초월한 고귀한 감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사랑의 축복과 경이로움을 전하고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가장 성공적인 화가였으면서도, 논쟁의 중심에서 부와 악평을 함께 성취한 인물이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일체 설명이나 기록을 남기는데 철저하게 무관심했던 그를 이해하기 위해선, 예술가를 환희와 고통의 극단으로 몰고 간 세기 말, 격변의 그 시간 속을 천천히 걸어가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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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은(SF 한문협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