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잔병치레 한번 없던 한 살배기 딸아이가 많이 아팠다. 처음에는 열이 조금 있길래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해열제를 사서 먹였는데 열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네 시간마다 약을 먹이고 열이 떨어졌나 안 떨어졌나 확인하기 위해 그 작은 귓구멍에 체온계를 갖다 대길 수십 번, 급기야는 아이 열이 104도까지 치솟았다. 콧물, 기침 등의 증상은 없는데 나흘이 지나도 열이 잡히지 않아 토요일 아침, 어전트 케어를 찾았다. 의사는 코로나도 아니고 별다른 특이점이 없다며 이틀 정도 더 해열제로 열을 떨어뜨려보고 그때도 차도가 없으면 월요일에 다시 담당 소아과 전문의를 찾으라고 했다.
별다른 소득 없이 집에 돌아와 오늘은 열이 떨어지길 바라며 잠도 설쳐가며 아이를 간호했다. 불덩이같이 뜨거운 아이를 새벽 내내 물수건으로 닦아 내고 닦아 냈다. 열이 떨어지는가 싶다가도 또 오르고 오르길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월요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 담당 소아과에 전화해 사정을 설명하니 버츄얼 진료를 잡아 주었다. 오후 세시에 화상으로 의사를 만났고 상황을 설명하니 이렇게 일주일간 고열이 지속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당장 큰 병원을 가보라고 했다.
간단히 짐을 싸서 남편과 함께 가까운 어린이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예상대로 많은 어린이 환자들이 부모와 함께 대기 중이었다.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도 서른 명은 족히 넘는 환자들이 있었기에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되어가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멀리서 고막을 찌를 듯이 울어 재끼는 갓난아기를 안은 엄마, 아빠가 뛰어들어온다. 사색이 된 부모의 모습을 보니 아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대기실에 있던 모두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모든 대기줄을 무시하고 먼저 들어가는 이들에 아무도 항의 한마디 하지 않았다.
네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간호원이 우리를 불렀다. 아이와 함께 들어가서 상황을 설명하고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소변 검사를 위해 아이 생식기에 호스를 꽂아 소변을 받았다. 피를 뽑기 위해 오른쪽 팔목에 주사 바늘이 꽂힌다. 혈관을 찾지 못했는지 다시금 왼쪽 팔목에 바늘을 꽂는다. 딸아이는 자지러지고 나는 대신 내 팔목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바늘을 이리저리 꽂은 지 네 번 만에 드디어 그 어린것의 피를 뽑았다. 엑스레이도 찍었다.
결과를 기다리는데 문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살짝이 열린 문 사이로 아까 아기를 안고 뛰어가던 그 부모가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그들의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짐작으로는 아이의 상태가 위중한 것 같았다. 내 아이도 아파 이렇게 누워 있지만 그보다 훨씬 작은 생명이 생사의 기로에 있다고 생각하니 같은 부모의 입장으로 마음이 아팠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내 아이와 그 작고 힘없는 생명을 위해 잠시나마 신께 기도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의료진이 들어와 딸아이가 고열에 시달린 이유는 마일드한 폐렴 때문이라고 했다. 항생제를 처방해 줄 테니 열흘간 먹이고 주사 한 방을 맞고 가보라고 했다. 큰 병은 아닐까 노심초사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아이는 어느새 내 품에서 쌔근쌔근 잠이 들어 있었다. 시곗바늘이 새벽 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딸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컨디션을 회복했다. 아찔한 한 주였다. 다시 예전처럼 해맑게 웃는 아이를 지긋이 바라본다. 응급실의 그 아기도 지금쯤 회복하여 엄마, 아빠 앞에서 천사같이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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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