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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 핀 에델바이스

2022-02-26 (토) 김덕환 팔로알토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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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릭삐릭, 히요, 호호, 호이오…촉촉촉’

오마이 가앗….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나. 자정이 지난 야심한 밤에 귀갓길 대문앞 잎이 무성한 이름모를 가로수의 나뭇 가지 속에서 새 한마리가 카메라 플래시로 요리조리 비추어 봐도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도 날아갈 생각도 안하며 10여분 이상을 계속 울어댄다. 카나리아인지 꾀꼬리인지…. 평생 꼭 한번 들어보고 싶은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필시 10년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축하하러 새로 날아오신 것일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잠시 빠진다.

서울에서 정말 열과 성을 다해 나의 멋진 책이 세상에 선보일 수 있도록 애써준 출판사에서는 오늘 저녁 조금전 마친 ‘문학의 밤’ 컨셉의 출판기념회에서 사용한 배너, 순서지까지 정말 프로페셔널하게 만들어주었다. 한국의 출판실력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오-썸 Awesome’이다. 한국의 첨단산업과 문화와 궤를 같이 하는 어마어마한 실력이다. 최소의 인원으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실력, 바로 한국의 반도체, 차량, 조선산업의 실력이요 K-Pop의 실력이다. 주고받는 이메일, 카톡의 한문장 한단어에도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진지하게 프로젝트에 임하는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민와 살던 미국생활 20년 동안 잠시 잊고 살아야했던 한국인들의 바로 그 근성,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하라’의 치열함과 맹렬함의 소산이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내 이름 뒤에 ‘작가’라는 호칭이 붙었다는 것이. 돌아보니 문예창작과에 다니던 5살 터울의 막내 동생의 영향도 작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동생은 군사정권 시절 거문도에서 의문사한 채 발견된 가냘픈 체구의 전임 총학생회장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겠다고 시작한 일이 산업체 위장 취업이 연루된 반정부활동의 길로 빠진 뒤, 졸업후에는 참여연대에서 연대사업국장일도 수년간 하느라 전공인 문학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는지 작가가 되는 길에서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아왔다. 문학을 전공한 동생 덕분에 나는 그가 들고 다니던 ‘껍데기는 가라’의 민족시인 ‘신동엽 평전’, 김원일 작가 등 잘 모르던 문인들의 작품을 잠깐씩 훔쳐 읽으며 문학적 소양을 키워올 수 있었던 것이다.

40대 초반까지 금융인으로 살다가 이민와 지금껏 살아오면서 ‘작가’가 된다는 것은 난공불락이고 오르지 못할 머나먼 쏭바강의 일로 여기며 살아왔다. 내가 쓰는 글이 미주한국일보와 같은 리딩 페이퍼에 게재되고 많은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매월 기고한 글이 어느새 6년여 기간이 흘러 제목과 같은 책을 발간할 수 있었다니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그간 신문사에 보낸 70여편의 수필을 나는 토씨까지도 거의 외우다시피 하지만, 어쩌다 신문에 나오는 글을 보는 독자들이 그걸 다 기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저간의 작품들을 이렇게 책으로 모아서 내고보니 또다른 깊은 애착이 생긴다. 페이스북 같은 SNS에 띄우기 쉽게 신문을 스캔한 파일은 빠지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놨기 때문에 따로 원고를 보내야하는 수고는 걱정 안해도 될 거 같아 우선 한국의 주요 출판사를 검색해서 출판의향을 타진했으나, 한군데에서도 관심을 두는 곳이 없어 다소 실망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남편의 해외지사 발령으로 시작한 싱가폴에서의 해외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촌 방방곡곡, 진진포포 특히, 동·서남, 중앙 아시아, 중근동, 이집트 등의 사정에 놀라울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보유한 충남 논산의 이름도 특이한 쎈뽈여고 출신의 페친이 ‘지구별 가슴에 품다’란 책을 미국에서 귀화한 푸른눈의 경희대 국제학부 이만열 교수와 공저로 최근 발간했다는 소식을 올렸길래 출판사 소개를 부탁했더니 일이 이리 일사천리로 진행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작년말 이 일을 시작할 때 마침 오랜 기간 공들인 딜도 마무리가 잘 돼 출판에 소요되는 기본비용(?)도 흔쾌히 충당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설레고 바쁜 연말연시 할러데이 시즌을 나는 본업을 하는 중에서도 짬짬이 밤늦게까지 원고를 교정보고 출판사 측과 디자인 의견을 교환하며 지내느라 피곤한 가운데에서도 의미있는 시간을 정말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책이 탄생하기 까지 책의 디자인에 관한 영감은 물론 귀한 지면을 할애해주신 한국일보 관계자 분들과, 팬데믹의 우려를 뚫고 기어코 참가해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연대감을 보여주신 참석자들, 그리고 가슴이 뭉클한 축사를 해 주신 베이지역 커뮤니티의 리더분들과 첼로 연주로 행사의 격을 올려주신 칼럼니스트이자 첼리스트님, 참신한 이미지로 멋지게 사회를 맡아준 동창회 수석 부회장님, 그리고 커뮤니티 행사를 위해 기탄없이 사용을 허락해 주시고 많은 편의를 제공해 주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마운틴 뷰 교회에 나는 커다란 마음의 빚을 졌다.

<김덕환 팔로알토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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