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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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이웃 1

2022-02-25 (금) 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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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에서 잊고 살았던 창밖을 언젠가부터 쳐다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나가고 난 후부터는 고요가 밤이고 낮이고 집 앞뒤를 채우고, 정적은 뒤뜰 나무 사이에서 서성거리며, 먹어도 늘 허기가 왔다. 2층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내려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앞집에는 내 나이 또래의 부부가 산다. 15년 동안 말 한마디 나눠 보지 않았지만 그들이 사는 생활을 거의 안다. 들고 나는 소리와 키 작고 예쁘장한 여인의 종종걸음. 남자가 까만색 지면에 낮게 달리는 스포츠카를 닦으며 노래를 부르는 시간을 안다.

유난히도 여인의 날카로운 중국어가 예사롭지 않던 어느 오후,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눈에 익숙한 911 몇 대가 그 집에 섰다. 한적한 동네에 생소한 소음, 파라메딕(paramedic)들의 분주한 몸놀림과 당황한 여인의 모습에서 심각함이 전해왔다. 그 집은 한동안 조용하였다. 며칠 후 장례를 마친 듯 정중한 인사를 나누는 검은 정장 차림의 신사들과 조화 바구니가 보였고, 염려가 되던 그날 남자는 유명을 달리한 걸 알았다. 그 후 커다란 컨테이너 차량이 집 살림들을 싣고 나갔고, 이내 일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페인트 병을 들고 왔다 갔다 하더니만 ‘for sale post’가 서 있었다. 한 달 남짓한 사이에 ‘Sold out post’가 다시 붙여졌다. 부부라는 이름의 막이 내린다는 팻말 같았다. 시원찮은 국에 입을 덴다더니, 이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다툼이 방아쇠가 되어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잃는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사인(死因)은 알 수 없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에는 24시간 우리의 실수를 기다리는 죽음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다시 새길 수 있었다.

흔히 욱하는 화가 그러하다. 머리에 김이 난다, 혹은 열을 받는다고도 하고,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을 다혈질이라고 한다. 이 둘을 합친 홧김이란 신문 지면의 사건 사고 면에서 자주 나오는 단골 단어이기도 하다. 화가 나는 이유를 알고, 다스리고, 삭이고, 화를 이기는 훈련, 화를 조절하는 법(Anger Management)을 누구나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화를 푸는 시원한 방법은 어디에도 없고 시원하도록 풀면 남과 나에게 모두 유익한 일이 없으며, 혼자 참아내면 더욱 오래오래 남아 자신을 괴롭히는 홧병이 되기도 한다. 화는 열이라 식혀야 하고 식도록 기다리는 지혜가 있었더라면… 어이없이 혼자 남겨진 여인을 나머지 인생이 어떻게 몰아 갈지 안타까웠다.

<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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