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졸려! 저누무 지루한 일장연설. 하지만 절대 잠들면 안 된다. 체면이 있지. 두 눈을 비비고 손가락 마디를 뚝뚝 뿌러뜨려 본다. 펜으로 허벅지도 찔러본다. 그 때 뿐이다. 스르르 감기는 두 눈은 천하장사도 못 들어올린다. 낮 시간에 심하게 잠이 쏟아지는 건 계절 탓이 아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훤한 대낮에 쏟아지는 잠, 감정이 극도로 흥분할 때 온몸에 힘이 쫘악 빠지거나, 잠이 들려는 순간 깜빡! 환각으로 빠지는 느낌, 가위 눌림(수면마비) 등은 ‘기면증’ 이라는 ‘수면 장애’ 가운데 하나다.
잠이 너무 오면 너무 와서 걱정, 반대로 잠이 안 오면 안와서 걱정이다. 밤마다 베개를 껴안고 다리를 올려봤다가 꼬아봤다가 반대방향으로 뒤집어 누워봤다가…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쑤세미를 만들어도 잠이 안 오는 불면증은 전체 인구의 무려 35-48퍼센트가 경험한다. 스트레스 엄청 받은 날, 잠 안 오는 건 그렇다 치자. 늦은 밤, 데이트에서 돌아와 달콤했던 연인의 체취가 실시간 떠올라 잠 못 이루는 것도 그렇다 치자. 이유도 없이 잠 못 이루는 밤이 한 주일에 3번 이상, 불면 때문에 낮 생활에 방해를 받는 일이 석 달 이상 계속된다면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하다.
잠 못 이루는 것만 불면은 아니다. 처음에 잠들기가 어렵거나 오래 잠들지 못하고 중간에 계속 깨거나, 새벽에 일찍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경우, 잠이 부족해 업무 시간에 집중이 어렵고 피로하거나, 밤낮이 바뀌어 수면 패턴이 흔들리는 것도 ‘수면 장애’로 본다. 다리가 천근만근 하지불안증후군도 수면 장애다.
“남편이 코를 너무 골아요. 이혼 사유가 되나요?” 심하게 코를 고는 남편 때문에 3년 전부터 각방을 쓰기 시작했다는 L부인의 하소연이다. L부인이 신혼 때 산 하늘하늘 잠자리 날개 가운일랑 한마디로 “꿈 깨!” 처지로 전락. 남편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음악을 들으며 시와 사랑을 속삭이라던 로맨틱 상상은 쓰레기통으로 내던진 지 오래다. 튼튼한 귀마개를 주문해 쓰다가 아들이 대학 기숙사로 떠난 뒤 아예 아들 방으로 이사를 했다. “잠을 이루기가 어려워서 처음엔 불면증이라고 생각했어요. 귀를 막고 억지로 잠이 들었다 싶은데 그담엔 계속 깨요. 시계를 보면 고작 한두 시간이 흘렀을 뿐이죠.”
코를 고는 사람이라고 밤새 고는 건 아니다. 노화, 비만, 고혈압 등으로 코골이 가운데 35퍼센트가 겪는 수면 무호흡증도 본인과 파트너에게 모두 힘든 일이다. 드높은 코골이 사운드가 “크아 크아 크아~~~” 하다가 갑자기 소리가 뚝 끊기면서 20-30초 간 잠잠. 옆에 누워 뒤척이던 L부인이 “엇? 설마 갑자기 심장마비?” 하고 놀라서 벌떡 일어나 남편 얼굴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합푸르 푸르 푸르르우~~~” 무호흡으로 인해 발생한 저산소증을 만회하기 위한 몰아쉬기다. 아침에 깨어도 잠 잔 것 같지 않고 계속 피곤하기 십상. 건강의 위험신호다.
“각방 후에도 잘 못자요. 간신히 잠이 들면 꿈이 너무 많은데 죄다 개꿈이더라고요.” 무의식 세계에 메스를 댄 프로이드에 의하면 L부인의 꿈은 개꿈이 아니라 그녀의 중요한 심리적 행위이며 충족되지 못한 소망을 나타낸다. 꿈꾸느라 잠을 못 잔다는 건 근거 없는 이야기. 평균 7시간 잠 중에 2시간은 꿈을 꾼다. 꿈은 렘수면(Rapid Eye Movement) 중 일어나며, 개꿈이냐 예지몽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기억 하는가 아닌가의 문제다. 자주 깼다면 기억하기 쉬울 것이다. 술 마신 날 새벽이나 우울증이 있는 경우엔 꿈을 더 잘 기억한다. 잠 잘 자고 밥 잘 먹기. 결국 이 두 가지가 정신건강의 바로미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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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