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이 속아왔듯이 나도 사람에게는 누구한테나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인생 80여 년 살아오면서 ‘선택의 자유’는 신념과 용기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작가 J (John) R (Richard) L(Lane) 앤더슨 Anderson(1911-1981)은 인간의 탐험심에 관한 그의 저서 ‘율리시스 요인(The Ulysses Factor The Exploring Instinct in Man, 1970)’에서 (352페이지의 책 내용을 단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게 주장한다.
‘인간의 정신은 여러 개의 창문을 갖고 있다. 어떤 창문이든 열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창문을 열어보고 싶은 본능을 타고났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 (Odysseus)의 라틴어 이름이고, 로마인들은 라틴어로 울릭세스(Ulixes), 혹은 울리세스(Ulysses)라고 불렀고, 영어로는 율리시스라 하는 이 이 ‘율리시스(Ulyssess)는 그리스 전설 시대에 이타카(Ithaca)의 왕으로, 그는 기원전 8세기경 고대 그리스 중 암흑기 말기에 활동했던 유랑시인 호메로스(Homer)의 서사시 ‘일리아드 (Iliad)’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며, ‘오디세이(Odyssey)’ 의 주인공이다.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는 그의 대표작 소설 ‘율리시스(Ulysses, 1922)’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율리시스’ 속에 수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춰 두었기 때문에 앞으로 수 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바쁠 것이다. 이것이 (나를) 불멸의 작가로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
그는 또 이런 말도 남겼다.
“나는 나 자신이 진짜 모험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건대, 진짜 모험이란 집에만 있는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인 까닭에 타향(他鄕)에서 감행해야 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를 정도로 높은 이상과 무지갯빛 낭만으로 터지도록 가슴 부풀었던 젊은 시절 나도 모험심과 탐험심에 불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생 무대에서 활약한 역사, 문학, 예술, 철학, 종교 세계의 대탐험가들에 관한 책을 탐독했다. 인간 정신의 창문을 열고 새 지평 아니 천평(天平) 아니 우평(宇平)을 개척한 그들 못지않은 탐험가가 될 것을 꿈꾸면서 그 어떤 모험도 불사했다.
홍길동이니 돈키호테란 말 들으면서 좌충우돌, 뒤죽박죽, 천방지축 날뛰던 내가 어느 틈에 80대 중반 노인이 되고 보니, 하늘의 별이라도 따겠다는 다른 많은 몽상가들처럼 풀죽은 나도 조금은 미몽에서 깨어나 냉엄한 현실이란 환경과 사회적인 관습에 얽매여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웬일일까. 나의 가슴은 젊었을 때 못지않게 여전히 설레며 벅차게 뛰고 있다.
새 창문을 열고, 새 문을 두드리며, 새로운 지평선 아니 천평선 아니 우평선을 향해 새로운 코스미안의 기똥찬 길을 떠나고 있다. 신기루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 새 오아시스, 새 코스모스를 찾아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나의 마음과 혼을 꼭 닮은 신(神), 다시 말해 나의 진짜 ‘짝’ 아니 작은 나 ‘소아(小我)’의 큰 나 ‘대아(大我)’를 찾아가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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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상/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