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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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노란 수선화 한송이

2022-02-22 (화) 이은경(산타크루즈 코리안 아트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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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마을은 해발 300피트 산마을이라 공기도 좋고 적송 등 나무들이 많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앞산에 떠오르는 해가 오렌지 빛으로 하늘을 물들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마치 설악산 어느 산속 집에 있는 듯하다. 앞집 지붕 위에 눈이 내린 듯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있다. 낮에는 제법 초봄 날씨로 햇볕이 따뜻하지만 아직은 아침 공기가 차게 느껴진다. 벽난로 앞에 앉아 모닝 커피 한잔에 조용한 음악을 틀어 놓고 여명을 보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모닝 커피 한 잔 뒤 남편과 동네 산책을 나가려고 문을 나서는데 앞 마당 화단에 노란 수선화가 한 송이 피었다. 노란 수선화가 ‘주인님, 굿모닝 좋은 아침이에요. 반가워요’라고 반기는 듯했다. ‘나는 와우! 노란 수선화야 안녕? 아직 서리가 내리고 있는데 활짝 피었네’라고 인사했다. 노란 수선화가 피었다는 것은 봄을 알리는 신호임을 나는 안다. 작년에 심어 놓고 잊고 있던 수선화 알뿌리가 겨울잠을 자고 나 기지개를 펴고 인사를 하는 모습에 자연의 위대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죽은 듯 땅속에서 잠을 자다 때가 되면 피어나는 노란 수선화!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여기저기 꽃들이 제 색을 뽐내고 있었다. 동백꽃과 매화는 활짝 꽃잎을 피우고 목련도 봉오리를 피우고 있어 우리 산마을에 봄이 오는가 보다. 아니 봄이 오는구나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제리 할아버지집을 지나다 보니 제리 할아버지 앞마당에도 노랑 수선화가 몇 송이 피기 시작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10년 전에 돌아가셨고 이 집에 새로운 주인이 살고 있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수선화 한 송이를 꺾어 주던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날 소방차가 제리 할아버지 집 앞에 와 있었고 제리 할아버지는 노란 수선화가 활짝 핀 날 천국 여행을 떠나셨다. 할아버지는 떠나셨지만 그의 노란 수선화는 ‘나를 기억해줘’라고 속삭이는 듯 활짝 웃고 있다.

팬데믹으로 답답하고 앞이 잘 안 보이지만 그래도 자연은 꿋꿋이 자기 길을 간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움츠리고 힘들어도 씩씩하게 잘 견디어 내라고 노란 수선화는 손짓하며 미소를 보낸다. 나도 노란 수선화에게 속삭여 본다. ‘고마워 노란 수선화야.’ 노란 수선화의 활짝 핀 모습이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생명이 되면 좋겠다.

<이은경(산타크루즈 코리안 아트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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