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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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가장 큰 선물

2022-02-18 (금) 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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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남겨둔 짐을 정리하면서 회한이 담긴 일기를 보았다. 간호사로 일하며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라 적힌 글에서 아련히 한 아버지가 떠올랐다. 정신과 폐쇄병동에 앳된 중학생이 입원하였다. 한 발로 위태로이 벽을 지탱해 서 있고, 한쪽 팔로만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자기 체중을 최소의 면적으로 지탱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으나 몹시 힘들어 보였다. 밥도 먹지 않고, 모든 치료를 거부했다.
지구가 아프다며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증상이 심각하고 약을 먹지 않아, 빠른 효과를 위해 의료진은 전기충격요법을 선택했다. 치료적 목적으로 이마에 전극을 흘려 경련을 유도하는 치료이다. 경련 후에는 깊은 수면에 빠지고, 기억을 순간 상실하게 하여, 고통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를 꺼내 오는 것이다. 약물치료보다 일시적이나마 극적으로 증상이 좋아지기도 한다.
효과는 놀라웠다. 밥을 먹기 시작하고, 아무렇지 않게 걸어다니며, 학교를 가야 한다고 했다. 망상의 세계에서 현실로 되돌아온 것이다. 토란 잎에 그림을 그리고, 칡을 캐어 입에 물고, 물고기를 잡아 놀이하던 아이는 서울로 이사와서, 일에 매인 부모님과 시골에서는 비교되지 않던 가난, 친구의 따돌림 등의 혼돈상황에서 지구의 의미는 학생 자신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고맙다며 한 꾸러미의 선물을 가져왔다. 그가 다니던 A회사의 화장품이었고 우리는 특별한 느낌 없이 나눠 가졌다.
전기충격요법의 한 사이클이 거의 다 되었을 무렵 아버지가 갑자기 아이의 퇴원을 요구했다. 벌겋게 그을린 초췌해진 아버지는 젊은 수간호사 앞에서 손으로 연방 눈물을 닦으며 어깨를 들먹였다. “애가 공부재주가 있어 항상 일등을 하고, 촌에서는 부지런해야 먹고 사는데 책만 보고 게을러서 서울서 공부시켜 박사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아뿔싸! 고마워서 우리에게 주려고 회사에서 화장품을 몇 개 가져온 게 발각되어, 그로 인해 면직되었다고 했다. 선물을 되돌려주었더라면...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히죽거리고, 옹색한 비닐 봉지봉지 퇴원 용품들을 들고 있는 손가락 사이로, 속으로 울고 있는 아버지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10층에서 타는 엘리베이터가 이들을 지상보다 더 깊은 지하로 떨어뜨릴 것만 같았다. 이 아버지 등 뒤에 우표딱지를 붙여, 하느님께 긴급구조의 빠른 결제를 부탁하는 속달로 부쳐주고 싶었다. 그는 가장 큰 선물을 한 셈이고, 나는 살아가는 동안 산 교훈으로 평생 잊지 못할 가슴 아픈 큰 선물을 받았다.

<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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