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도덕의 굴레
2022-02-11 (금)
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
지난 1월 25일, 미시간대학 마크 슐리셀(Mark Schlessel) 총장이 영예로운 퇴직 1년을 앞두고, 강제 퇴임을 당하였다. 부하 여직원과의 밀애가 고발되었고,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것이 공식 사유였다. 64세까지 쌓아 올린 상아탑의 공적은 사라졌다. 이어 2월 4일, 세기의 힘있는 리더라는 CNN 방송 사장 제프 주커(Jeff Zucker)가 사임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통렬한 설전을 벌였던 56세 주커가 부사장과의 사내 로맨스를 숨겼다며, 그의 전성기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이 사회의 규범이 “우리는 멋진 9년을 보냈다”는 이혼 남녀들의 행복을 강제로 떼어놓은 양태였다.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라는 것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도덕으로 재는 잣대는 법보다 힘이 있고, 창만큼이나 날카롭고, 공적 책임은 사적인 선택보다 우선이라는 묵시적 논리가 공론화 된 셈이다. 백악관 스캔들에 너그럽던 애정의 자유와 권리보다 훨씬 상위 차원의 청렴으로 강조되어 보였다.
하지만, 일반인이라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파워를 지닌 공인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해고되며, 불명예 사임을 할 수밖에 없는, 도덕의 박해를 받은 피해자로도 보였다. 공인은 더 높은 도덕의 규범을 강요받기 때문에, 때로 증폭된 수치심은 인간을 자살이라는 처참한 모습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반면, 이 사건이 영상화되어, 꼭 만나고 싶던 바로 그 사람을 인생에서 만나, 주옥같은 사랑의 언어와 감미로운 음악에 포커스가 맞춰진다면, 관객의 신념과 규범은 소리없이 울타리를 낮추며 다른 가치로 옮겨갈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두 가지는, 자연과 사랑이라고 하며 이 또한 아름답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물며 불륜을 그린 영화를 보면서도, 주인공을 독려하고 응원하며, 애잔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 않은가! 이런 모순(矛盾)은 우리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것 같다.
도덕의 굴레는 인간의 생존이나 행복 앞에서 절대적인 진리값은 아닐지라도,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금지의 선을 제시하고, 힘없는 약자를 부드럽게 애무하며, 끊임없이 누군가에게는 희생을 요구하기도 할 것이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슈쥬의 말(侏儒の言葉)’이라는 책에서 도덕을 인용해 본다. 도덕이란, 편리라는 말의 다른 이름이다. 즉 ‘좌측통행’과 같은 것이다. 그것을 지킴으로써 사회가 편하게 유지되는 것뿐이다.
<양벨라(버클리문학협회 회원)>